'철학'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철학을 얘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명언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입니다. 여섯 자로 구성된 이 짧은 문장에 많은 생각, 다양한 대답을 하게 하니 이보다 더 철학적인 말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문장을 존재의 의미, 즉 ‘나는 왜 존재하는 거지?’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는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난 무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면서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저의 한계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왔습니다. 공부하고 시험 봐서 성적으로 정렬되던 학창 시절과는 달리 계량화되지 않는, 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 사람들과의 관계와 네트워크, 사내 정치학을 맛보면서 ‘나는 얼마나 성장할 수 있고 어디까지가 내 한계일까’라는 물음으로 변했습니다. 그 이후에 ‘너 자신을 알라'는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로 초점이 바뀌었습니다. 제 삶이 제 주위 사람과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으로 말입니다. 제 자신에게 시작되었던 질문이 점점 범위를 넓혀 내 주위에 미치는 영향까지 확장되고 있구나 생각하며 말입니다.
그리고 요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장을 접하면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게 실제 맞는지 어떻게 알지?’라고 질문으로 환치됩니다. 이 의문은 사실 몇 년 전부터 스멀스멀 피어올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영국에서는 브렉시트가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되는 뉴스를 볼 때부터였나 봅니다. 어쩌다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정치와 경제 현황 이야기하면서 확실해졌습니다. 분명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게 바라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서로를 보면서 의심이 짙어졌습니다. 그리고 요즘, 매일 뉴스를 도배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대통령 선거 현황을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을 합니다 — 내가 아는 게 정말 맞는 걸까? 내가 아는 게 맞는지 어떻게 알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는 게 맞는지 어떻게 확인하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도 읽었습니다. 똑똑하게 생존하기(Calling Bullshit: The Art of Skepticism in a data-driven world)와 똑똑하게 논픽션 읽기(How to read nonfiction like a professor)란 책을 읽으며 비판적으로 읽고 생각하라는 조언과 함께 당장 써먹을 법한 방법도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지 고민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당장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사실 한 민족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조선 같은, 고대 루스(Ancient Rus)의 후예라는 인식을 나누고 있는 형제 나라 같다고나 할까요. 우크라이나 국민의 4분의 1이 지금 러시아에 친인척이 살고 있고, 25%의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나 가까웠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선언 이후 ‘특별 군사 조치(special military operation)’를 결정하고 군부대가 우크라이나 영토로 침공을 시작한 때가 2월 24일, 벌써 10여 일이 지났습니다.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지역을 통과하여 수도 키예프(Kyiv)에 집결한 러시아 군대는 키예프에 폭탄을 투여하기 시작한 지 나흘이 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주요 정부 건물을 포함하여 병원과 유치원이 폭격을 맞는 사진과 동영상이 소셜 네트워크와 뉴스 사이에 넘쳐납니다. UN에서는 천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포로로 잡힌 러시아 군인들의 동영상도 올라옵니다. 청년 병사들이 러시아에 있는 어머니에게 훈련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전쟁으로 왔다가 포로로 잡혔노라고 울먹이며 전화하는 영상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어로 직접 러시아 국민들에게 제발 이 전쟁을 멈춰 달라고 호소하는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세계 곳곳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전쟁 반대' 팻말을 든 사람들이 시위를 합니다. 외신에서는 러시아의 몇몇 도시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고 전해옵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 기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해옵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사업가 Misha Katsurin이 러시아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수도 키예프에 떨어지는 러시아의 폭격을 피해 부인과 아이들을 피난시키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그럴 리 없다고, 이건 전쟁이 아니고 우크라이나가 나치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돕는 것뿐이라고 아들의 호소를 믿지 않았답니다. 러시아의 형제자매에게 전화해서 지금 폭격을 피해 며칠째 방공호에 숨어있다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러시아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폭격 같은 건 없었고 민간인은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Ukrainians find that relatives in Russia don’t believe it’s a war: Many Ukrainians are encountering a confounding and frustrating backlash from family members in Russia who have bought into the official Kremlin messaging.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친척들이 전쟁이 일어났다는 걸 믿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은 공식 크렘린 메시지를 믿는 러시아의 가족들에게서 당혹스럽고 절망적인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By Valerie Hopkins, ‘Ukrainians find that relatives in Russia don’t believe it’s a war’, New York Times, published March 6, 2022 and updated March 7, 2022
Ukrainians Find That Relatives in Russia Don't Believe It's a War
신문과 방송, 인터넷조차 정부의 감시와 통제하에 놓여 있는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내부에서의 전쟁 반대 시위도, 그 시위단을 폭력으로 대처한 경찰의 대응도, 각국에서 일어나는 반 러시아 시위도 보도되지 않습니다. 러시아 군인들은 나쁜 정치인과 나치 세력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해방시키고 있고 우크라이나 민간시설 및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폭격이나 총격은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천백만 명의 러시아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친척이 있다는데 왜 러시아의 침공에도 조용한지, 왜 푸틴은 자신 있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지금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