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시대의 경제, 정치, 문화, 사회 등의 측면에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 시대의 한국 신화에 관한 연구는 드물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1930년대 한국 신화가 식민지 시대에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해봤다. 이 시기는 이상이 김기림, 정지용 등 9명과 <구인회>를 조직하여 활동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상은 이 시기에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시기이기도 하다.
일제는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을 식민화 할 때 서구를 많이 참고했다. 당시의 서구는 신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화 연구에 많은 노력을 들였다. 대표적인 예로, 히틀러는 독일의 유럽 통일을 위해 개인주의, 마르크스주의 등의 사상을 담은 서적을 모두 불태우고, 신화를 강조하여 영웅을 숭배하는 정책을 실시한다.
그렇다면, 왜 일제와 서구는 신화에 많은 관심을 가졌을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가 한 민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융(C. G. Jung) 이 내린 신화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aside> 🎙️ “선조들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반복하여 겪은 밑바탕이 되는 경험들은 우리 의식의 구성 요소가 된다. 이것은 민족적인 무의식을 통해 유전되어 내려오며, 환상, 꿈, 종교, 신화 또는 문학에 상징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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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민족의 의식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는 신화에는 각각의 민족이 가지는 집단 무의식이 녹아 있고, 신화는 어떠한 민족의 의식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인 것이다. 한국의 국새 손잡이를 정할 때에, 국민들은 ‘삼족오’를 가장 많이 선택했었다. 우리 민족의 집단 무의식에 고대 선조들의 신화 의식이 녹아 내려온 한 예인 것이다.
한국의 신화에는 우리 민족의 집단 무의식이 녹아 들어 있었기 때문에 일제는 단일민족 신화를 직접적으로 교육시키며 한국 신화를 부정했다. 필자는 한국 신화 중 삼족오 신화에 중점을 두어, 일제에 의해 한국 신화가 부정 되던 시기에 이상 문학은 한국 신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삼족오는 한국만의 신화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존재하는 신화를 일본의 신화에 편입시키거나 없애려 하던 내선일체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상이 한국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삼족오 신화를 문학의 모티브로 사용한 것은 일제의 신화정책에 반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상은 일제 강점기로 인해 한국의 신화가 사라지거나 변형될 것을 우려하여 자신의 작품에 신화를 인용하여 창작했다. 자신의 작품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신화를 남기려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