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명품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로고(Logo)다. 전면에 큼지막하게 박힌 로고는 우리가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사야 하는 지극히 당연한 이유를 제공한다. 가방이건, 옷이건 우리가 선택하는 아이템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중요한 건 브랜드 가치이고, 브랜드 가치는 곧 로고로 대표되기 때문이다. 로고로 인해 디자인이 빛나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볼품없어 보일 때도 있다.

반대로 로고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제품에 자신이 있어서거나 반대로 드러낼 만한 브랜드 가치를 쌓지 못한 경우로 나뉜다. 대부분의 중저가 브랜드들의 경우 후자의 경우로 수렴하는 반면, 고가 및 명품 브랜드들에서 로고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늘 이야기 할 이 발렉스트라(Valextra) 브랜드와 같은 독특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발렉스트라는 포스트 에르메스를 표방하는 이탈리아의 명품 패션 브랜드로, 주로 가죽 제품을 많이 제작하며, 여성용 가방을 비롯해서 지갑 등을 직접 제작해서 판매하고 있다.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한다면, 다른 일반적인 명품 브랜드들과 달리 자사의 로고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로고 없이, 품질로 인정을 받겠다는 브랜드 철학에서 품질에 대한 대단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발렉스트라의 V를 상징하는 시그니쳐 디자인만 확인 할 수 있을 뿐, 제품 외관에 없는 Valextra 로고는 가방이나 지갑을 열었을 때의 안 쪽 부분에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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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 지오반니 폰타나는, 투철한 장인 정신과 특유의 경영능력으로 초창기 가방과 수트케이스를 디자인 및 개발하며 특유의 감각을 표현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에 이르러서부터 서서히 각광을 받기 시작한 ‘made in Italy’ 스타일의 선봉에 서왔다. ‘24-Hour’ 라는 출장용 서류가방 제품을 통해 1954년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인 어워드 황금 컴파스 상을 수상하고, 또 1957년에는 그립 스프링이 부착된 머니클립을 발명해 디자인 국제특허까지 취득하는 등 디자인과 개발, 그리고 흥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1964년에 출시한 기내용 가방 ‘Avietta 48’은 지금도 여전히 발렉스트라 최고의 제품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1980년대에 이르러 이탈리아를 넘어 국외로 뻗어나가기 시작했으며, 고유의 디테일인 코스타 파이핑(Costa Piping)과 세련된 디자인, 질 좋은 가죽을 바탕으로 국제적 명성까지 더해갔다.

발렉스트라의 가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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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렉스트라의 제품들은 투스카니와 프랑스 남서부 지방의 최고급 송아지 가죽으로만 제작된다고 한다. 태닝과 재태닝을 거친 덕분에 높은 내구성은 물론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까지 얻을 수 있다고 하니 로고 없이 가죽 품질로 승부를 보겠다는 일념은 이러한 공정에 바탕을 둔 것인 듯했다. 컬러 역시 26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컬러를 생산하는 덕분에 발렉스트라 제품을 떠올릴 때 다채로운 컬러감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이 가죽 처리 공정 또한 발렉스트라가 세월에 걸쳐 쌓아올린 고유의 기술로이러한 고유한 역량들을 계속 이어나가고자 젋은 세대들에게도 교육하고 있다.

발렉스트라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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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발렉스트라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미니멀한 디자인의 지갑이다. 다채로운 가죽 컬러가 있음에도 PERGAMENA 컬러를 꼽는 건, 발렉스트라의 상징과도 같은 컬러이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아무 장식적인 요소 하나 없이, 정교한 봉제만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정갈하고 깔끔하며 담백하다. 앞서 언급한 코스타 파이핑은 제품의 강한 내구성을 위해 가죽의 가장자리를 사포로 마무리한 다음, 광택제를 세 번 덧칠하는 (몹시 번거로운) 공정을 통해 완성된다.

발렉스트라의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밀라노 스타일에 충실한, 우아하고 세련되면서도 필수적인 형태를 유지함과 동시에 디자인의 군더더기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발전해왔다. 가죽 제품들의 디자인이 점차 화려해지고 군더더기가 많아지던 시대에도 발렉스트라는 그 고유한 디자인 전통을 바탕으로 적절히 현대의 것과 조화를 이루며 차별화 된 가치를 전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발렉스트라는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모던함과 럭셔리의 균형을 이루는 브랜드로 자리잡게 되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온 심플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이 현대에 이르러 더욱 더 주목받는 발렉스트라만의 고유한 개성이 된 셈이다.

전통적인 건축물에서부터 출발한 예술적 시도와 고유한 개성, 그리고 공학적인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당대의 디자이너와 건축가들과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시도해왔고, 이것이 발렉스트라가 현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감탄과 사랑을 받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동력이 되었다. 전통에 만족하지 않고 고유한 디자인 철학 안에서 계속 새로운 시도와 접목시킨 노력을 통해 발렉스트라는 내놓라하는 명품 브랜드들 속에서도 새로운 디자인과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로고보다 더 중요한 건 제품 본연의 가치라는 철학

이탈리아어로 가방을 의미하는 ‘valigia’와 최상을 뜻하는 ‘extra’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Valextra는, 브랜드 이름 그대로 ‘최상의 제품’만을 의미할 뿐 스스로를 애써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도드라지는 그 가치는, 진정한 명품을 찾는 사람에겐 대체 불가한 브랜드가 되었음은 물론 시대를 초월한 영속성까지 더해가고 있다. 더불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로고에 현혹되어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듯 하다. 그 제품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느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