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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

F.K

1. 그건 바로, 이곳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은 그는 떠나려고 해본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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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월의 아침 끝없이 내릴 가을비의 첫 방울이 마을 서쪽의 갈라지고 소금기 먹은 땅으로 떨어질 즈음, 후터키는 종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소리가 들려올 가까운 데라곤 남서쪽으로 4킬로미터 떨어진 호흐마이스 지대의 외진 소성당 하나뿐인데, 거기엔 종이 없는 데다 종탑은 전쟁 중에 무너졌으며, 멀리 있는 도시의 소리가 여기까지 와 닿을 리도 없었다. 게다가 어쩐지 의기양양하게 울리는 종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아주 가까운 곳으로부터 바람에 실려 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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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어느 외진 황폐한 시골 마을. 그곳에서는 절대로 들릴 수가 없는 종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난 후터키의 독백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슈미트 부인과 외도 중인 그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번 품삯을 훔쳐 달아나려는 슈미트의 계획을 파악하고 한패가 되기로 합의한다. 허름한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가고자 하는, 전형적인 사실적 사회극과 같은 소설은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라는 인물의 귀환 혹은 부활이라는 소식과 함께 전혀 다른 분위기를 띠게 된다. 분명히 1년 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들의 등장으로 반복과 지루함뿐이던 마을 사람들에게는 혼란과 왠지 모를 기대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후터키에 의하면 이리미아시는 “마음만 먹으면 소똥으로 성을 지을 수도” 있는 “위대한 마법사”이다. 지겨운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가고자 한 그들이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갈 수 있는지, 이곳을 떠날 수 있는지조차 모른다. 사실 그들은 “떠나려고 해본 적”조차 없다. 이런 그들에게 있어 마법사와 같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의 귀환은 마치 ’메시아‘의 귀환과도 같다. 그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려줄 것이며 마법을 부려줄 것이며, 그들을 구원해 줄 것이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대한 기대와 희망의 스텝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2. 소녀는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천사들이 데리러 오는 중이라는 걸 소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어제는 하루,

오늘은 하루 더하기 하루

내일은 하루 더하기 셋

내일 다음에 내일은 넷이라네!

소외된 자들의 마을에는 그들로부터도 한 번 더 소외된 소녀 에슈티케가 있다. 아버지는 쥐약을 먹고 자살하였으며 어머니와 언니는 소녀를 방치하고, 오빠는 그녀를 무시하며 괴롭힌다. 자기만의 비밀의 다락방에서 홀로 놀이를 하는 것과 마을 사람들을 엿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이 소녀의 유일한 낙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런 소녀를 모자라고 음침한 아이로 취급한다. 오빠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소녀는 자신도 ‘이길 수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검은 고양이 미추르와의 대결을 시작한다. 자신의 묵직한 손 안에서 제압당하고 있는 고양이를 보며 소녀는 처음으로 자신 앞에 새롭게 열린, 권력이라는 우주를 맛본다. ‘난 네게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모든지 다...’ 그러나 고양이의 찢겨진 살갗과 솟구쳐 오르는 피를 보며 소녀는 수치와 후회로 목이 메이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