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골턴의 이야기로 회귀분석의 기원에 대해 살펴봤었어요. 기억이 가물가물한 분들을 위해 잠시 복습하고 가죠.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란시스 골턴은 스위트피 연구를 통해 평균으로의 회귀라는 개념을 정립했어요. 씨앗의 자손 세대에서 씨앗들의 무게가 제각각 퍼지지 않고, 각 세대 전체 집단의 평균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거였죠. 마치 연어가 강 상류로 회귀하는 것처럼 평균을 향해 모인다는 의미로 회귀라는 표현을 썼지요.

지난주에는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간 이 그래프를 조금 더 뜯어보겠어요. 이 다이어그램은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키를 가지고 골턴이 실험한 자료였죠? 하나하나 살펴보면 ADULT CHILDREN이라고 적힌 X축은 자녀세대의 키를 나타내요. MID-PARENTS는 부모세대의 키를 의미하죠. 그리고 좌표마다 위치한 숫자는 해당 값에 대응하는 데이터의 빈도수를 적은거예요. 이를테면 (68, 71)에 위치한 4라는 숫자의 의미는 자녀의 키가 68인치(172.7cm)이고 부모의 키가 71인치(180.3cm)인 경우가 총 4건 정도 있다는 겁니다.

그 다음으론 좌표계에 적힌 빈도수를 바탕으로 같은 수치끼리 직선으로 연결한거죠. 직선을 그리고나니 신기하게도 녀석들이 모두 중심이 같은 어떤 타원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깨닫고 골턴은 타원을 그렸어요. 타원의 장축(긴 폭)을 지나는 직선이 바로 오늘날의 회귀분석의 선형식에 해당하는 거죠. 그래서 골턴이 통계학의 꽃이라고 불리는 회귀분석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평가되는겁니다. 아래 그래프가 회귀분석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선형회귀(독립변수 1개, 종속변수 1개) 그래프인데요, 파란색으로 표현된 선이 선형회귀식인데 골턴의 다이어그램의 직선과 사실상 같다는 걸 알 수 있죠.

골턴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사실 오늘의 주인공은 위험한 과학자 프란시스 골턴이여요.) 1822년에 태어난 골턴은 여러 학문에 걸쳐서 본인의 족적을 남겨두었어요. 그것도 아주 굵직하게말이죠. 1850~60년대, 젊은 시절의 골턴은 세계 곳곳을 탐험하면서 지리학과 기상학에 관심을 두었다고 해요. 우리가 지리학과 지구과학에서 배웠던 고기압저기압의 개념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 역시 골턴이죠. 스페인 북부지방을 탐험하면서 고기압의 존재를 발견했고, 관련 내용을 출판해 세상에 알렸어요. 일기도를 처음으로 고안한 사람도 골턴이었어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다는 걸 발견하고는 범죄자 식별을 위해 지문을 감식하자고 최초로 고안한 사람도 골턴이었답니다. 1893년 본인 저서 <Decipherment of Blurred Finger Prints>(<흐릿한 지문 해독>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어요)를 통해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입증했죠. 당시 런던의 경찰청은 골턴의 지문감식법을 받아들여 지문을 활용한 수사기법을 도입했어요. 법의학에도 골턴은 엄청난 기여를 했습니다.

골턴을 생각하다

골턴을 생각하다

유전학을 연구하면서는 골턴은 회귀라는 용어를 정립했고, 이는 과학발전에 엄청난 기여였어요. 하지만 유전적 영향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인지 그는 우생학이라는 괴물을 낳았죠. 런던에서 일하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노동자를 보면서 골턴은 그들을 격리하고 그들의 피가 사회에 퍼지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노동자들이 강력범죄를 일으키고 영국 사회에 해가되니까 선제적으로 막아야한다는 거였죠. 나아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선 질이 떨어지고 능력이 좋지 않은 부적격자의 탄생을 적극적으로 제어하고 적격자의 탄생을 증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학문으로서도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었지만, 당시 서구열강의 식민지 지배 열망과 얽혀 우생학은 실제 정책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사회에 녹아들었어요. 원주민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우생학적 대학살이 벌어지기도 했고, 부적격자로 간주된 수용자들에게 강제 불임을 허용하는 법안도 세계 곳곳에서 시행됐죠. 나치 독일은 우생학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나라였어요. 게르만족이 제일 우월하고 다른 민족은 열등하다는 믿음으로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들을 살해하는 홀로코스트를 벌였죠.

통계학 뿐 아니라 유전학, 지리학, 기후학 심지어 법의학까지 학문 전반에 걸쳐 골턴의 영향력은 대단해보여요. 인류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죠. 하지만 그의 잘못된 생각은 동시에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어요. 하지만 우생학적 시선은 이제 구시대적 유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타인을 혐오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것 같아 슬퍼요. 골턴이 스코틀랜드 출신의 노동자를 바라봤던 그 시선, 우리가 조선족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무척이나 닮아있지 않나요...? 말이 길어졌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그럼 다음주까지 안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