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ToiIxMuqqMg
여름이 끝나감을 알리는 선선한 바람은,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여름 방학의 끝이고, 2학기의 시작은 새로운 시작이 되어감을 느끼게 해준다. 정말 계절이 바뀌었고, 정말 무엇인가를 시작해야만 하는 시기가 왔구나 하고.
국문학도의 꿈을 가득 품고 들어왔던 20살의 나는, 이상한 낭만이 있었다. 본디 국문과라면 토드백 안에 전공서적을 담고, 한 손에는 시집 또는 소설집을 들고 다니는 줄만 알았다. 문학을 향유하기 위해 낭만이라는 이름을 거창하게 붙이며 결석을 당연시 여기는 줄만 알았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먹고 살 길을 위해 공무원을 택하는 이들이 많았고, 결석은 그저 결석이며 놀기 위해서였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며 낭만은 저 뒤쪽으로 내팽겨치고 놀기 시작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크게 느끼자 2학기는 거진 학교를 가지 않았다. 한 번도 맞기 힘든 쌍권총을 맞고 정신을 차린 나는 군대로 도망가며 1학년의 망나니 생활이 끝이났다.
나의 1학년은 그랬다. 이룬 것도 없으며 얻은 것도 없는 그저 잃어버린 20살. 기억을 더듬어 그나마 좋았던 것은 무엇이냐 묻는 다면 내 이상과 걸맞는 선배를 만난 일이다. 그때가 딱, 2학기라는 새로운 시작을 하기 좋은 가을이었다.
학과 내에 시를 잘 쓰는 선배가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워낙 고학번이라 잘 마주할 일이 없었다. 어느날 선배가 글을 쓰기 위한 소모임을 새로 만든다고 해서 덜컥 가입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시도 잘 쓸 줄 모르고, 기껏해야 자기 소개서나 독후감이나 끄적이던 나는 선배와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첫 모임에서 선배는 당시 개봉했던 영화 '인간중독' 에 대해 쓴 글을 읽어주셨다. 표현법부터 남달랐다. 이게 진짜 글 쓰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구나.싶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정작 나는 주눅이 들었다. 나는 도저히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저렇게까지 못 쓸거라 느껴졌다. 이후에는 숙제를 내주셨다.
"자유 글쓰기"
뭐라도 써가긴 해야겠는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이미 상투적으로 쓰이고 있는 죽은 표현밖에 생각나질 않았다. 결국 글쓰기에 대한 포부를 썼다. 나는 앞으로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내 스스로 문학적 글쓰기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비평적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써내려갔다.
'나의 말과 글이 도끼가 되어, 얼어붙어 고정된 생각들을 철저히 부숴내고 싶다. 나의 말과 글이 비수가 되어 갇혀있던 틀에 생각들을 구해내고 싶다' 같은 뉘앙스의 글이었는데, 당시에는 나름 떳떳하게 가져가서 발표했던 걸로 기억난다. 선배의 평은 잘 쓴 글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 번쯤 써봄직한 글이라고 했던 것 같다. 6년 전의 일인데 기억하는 걸 보면 그때의 말이 나에게 비수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