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져진 들판 위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두 발을 굴러 떠나는지 머무는지 모를 아득한 감각을 가진 채
질문이 있는 자는 걷는다 의지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여지를 귓바퀴에 꽂아 두고 무지에서 혼돈으로
공연장의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조명에 들뜬 나날과, 세계의 골목을 누볐던 시절을 생각하며 펼치지 못한 장면과 열어보지 못한 문 뒤를 상상하는 취미가 있다.
무엇을 얼마나 붙잡을 수 있을까 의심은 덧칠하게 한다 마침표 없이 쉼표만 가득한 고행
숨이 넘어갈 듯 계속되는 붙잡히지 않는 시간처럼 이름을 붙여둔 동안은 고정되어 있다고 믿으며
제자리에서 힘차게 땅을 울리고 어둠에서 안개 속으로
마침내 그러나 곧
나는 심리라는 무형 에너지를 시각적 상징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한다. 조형에 기대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형상이 부적처럼 나의 걱정이나 후회를 대신 떠안아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작업을 지속하면서 나는 아무것도 붙잡아 둘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리는 모래알처럼 잡으려 해도 손을 빠져나가고, 파도처럼 방향을 뒤섞으며, 구름처럼 응축되어도 시간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게 된다. 그렇기에 캔버스 위의 형상은 나에게 잠시 위안을 줄 수는 있지만 곧 다른 불안과 걱정에 쓸려가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심리의 운동을 점, 선, 원의 형식으로 번역한다. 점은 순간이자 사건이다. 삶에서 어떤 장면이 나를 건드리는 찰나, 그것은 점으로 발생한다. 그러나 점은 고정될 수 없다. 하나의 사건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과거에 잠식된다. 점은 흩어질 운명을 지닌다. 흩어지지 못한 점은 응어리가 되어 마음을 괴롭게 한다. 점이 다른 점을 발견하면 이어지며 선이 된다. 이동이며 서사이다. 서로 다른 사건들이 연결되면서 우리는 과거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는다. 선은 확장의 가능성이자 모험이다. 선은 어느 순간 한 점이 중심이 되고, 위계가 생기며 나머지는 주변으로 밀려나면서 닫힌 원이 된다. 분류와 구조는 덩어리로 만들기 위한 필연적 형식이다. 원은 순환하며 같은 자리만 맴돌기에 견고해 보이지만 점 하나의 일탈로도 구조는 쉽게 붕괴한다.
일상에서 영감받는 순간은 점이며, 그것을 그림에 담는 행위는 선에 해당한다. 완성된 그림은 하나의 원이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원할 수 없다. 나는 온갖 일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며 마침내 그것을 이해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구조는 해체되고 곧 요소들은 자유를 얻는다. 그 자유로운 파편은 다시 어떤 순간 심리를 건드리며 또 다른 점에 기생한다. 나는 이 과정을 고통의 변장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기쁨에 형태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넓게 흩어지길 바란다. 고통은 빠르게 형태에 가두고 최소한의 자리만 내주려 한다. 그렇지만 삶은 고통과 기쁨을 함께 가진 채 태어나고 우리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이름을 붙이며 이해하고 있다고 오해한다. 나는 내가 오해하는 방식을 시각적으로 옮겨내며 또 다른 오해를 기다린다.

웃비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소금 60.6 x 50cm

걸음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60.6 x 72.7cm

ㅎ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60.6 x 72.7cm

마중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오일파스텔 60.6 x 72.7cm

만남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60.6 x 72.7cm

등잔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60.6 x 7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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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소용돌이 벽지 2012 캔버스에 아크릴릭 33.4 x 21.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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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새벽)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72.7 x 60.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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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저녁)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72.7 x 60.6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