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단위가 부끄러움인 사람.

사실 지난번에 누생누영에 몇 문장 올렸다고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얼굴에 열을 올렸다*(”느아앙아아아”라고 속으로 외치는 그런 거. 껄껄….)*. 너무 천진난만한 글이 아닌가, 지나치게 사사로운 것들이 아닌가, 이런 말들이 타인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의문형의 말들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사실에 상관없이 거의 습관처럼 되뇌는 말들이다). 부끄러움은 단순한 감정이라기엔 꽤나 어지럽고 지치는 일종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 하여간 나는 늘 그랬듯이 - 이번에는 빗소리도 위안 삼아 보며 - 풍선 마냥 부풀어 오른 나를 향한 의심을 애써 달래는 밤을 보냈다.

나는 내가 만든 것들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것을 대부분 부끄러워했다(어느 글에서 몇 년은 부끄러워하며 글을 썼다고 기록했던 기억이 난다). ‘완성되지 못함’에 대한 불안감을 진한 본능마냥 가지고 있고 가볍게 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한다. 거기에 맺히는 부끄러움은 습관이 되었고, 결과물을 내보이는 상황 자체에 쉽게 지쳐서 꾸준히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뒤로 물러선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완벽하고 멋져 보이는 것들을 볼 때면 비교하려는 시선이 일어나서 차라리 눈을 감고 잠자코 머무르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숨어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니 스스로가 답답해서 조금씩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것이고. (누생누영도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로선 웰컴 키트에 *“이제는 그만 숨어 있으려구 합니닷!”*라고 쓴 것이 꽤나 호기로운 선언이었던 셈이다. 그 문장을 다시 보며 숨고 싶어 하는 마음을 문밖으로 돌려놓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이 다짐에 조금 더 무게를 실어 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부끄러운 순간을 감내하며 성장하는 만큼 자주 멈춰 나를 보듬어주어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서투른 감정에 속아 다짐을 하찮은 것으로 무마시키지 않도록 마음을 들여다보길 반복해야 하는 사람. 간단히 말하면 망설임이 긴 사람이 나였다.

하지만, 망설임에 발걸음을 멈추더라도 여전히 마음의 방점을 원하는 곳에 두면 어떻게든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사람의 진심이니까. 몇 년이 흐른 뒤 결국 좋아하는 일에 돌아온 나를 보면 그랬다. 남들보다 많이 느렸던 내가, 그 느린 속도를 마음의 굳은살 마냥 서서히 쌓아가며 얻은 결론이다.

느린 대신 망설임을 여백 삼아 내 마음이 무엇인지 밀도 있게 헤아리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이 나라고. 아마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제야 스스로를 의심 없이 바라봐 주기 시작한 것 같다. 느린 만큼 발걸음 하나하나에 의미를 실어 놓는 사람. 남들만큼 재빠르지 못해 넓은 윤곽선을 그리지는 못하더라도, 작은 만큼 내가 온전히 품을 만한 모양을 그려나가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런 속도의 형태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어차피 계속 이럴 거라면, 내 모든 부끄러움에 그런 무게를 달고 싶다는 마음이 문득 든다.

그런 의미로… 요 글도 누생누영에 올리고 잠시 부끄러워하겠다. 이 부끄러움의 무게는 요 일기가 증명하길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