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소개글 HSC는 의대 증원 정국을 맞이하여 <정부 하기 나름이다 시리즈>를 시작합니다.정책의 효과와 한계에 대한 주장은 다 쫓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주장들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결국 정책을 통해 누리게 될 효과에 따라 종국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들은 시민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의대 증원 논의의 기초가 되는 여러가지 상황을 정리하는 글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혹시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HSC 이메일 healthsocialistclub@gmail.com 로 연락 주세요!

[정부 하기 나름이다] 2. ‘원정 진료’ 담론이 보지 않는 것

이어지는 호소, 쏟아지는 성명, '삭발' 투혼까지…

국제대회 유치 현장, 혹은 흔한 님비현상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이 광경의 주인공은 낮설게도 '의과대학' 입니다.

‘서울공화국’에서 겪은 설움을 해결할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열풍' 이라고 불릴 정도로 선호도가 높아진 의대의 인기를 반영하는 것일까요. 의과대학이 훌륭한 의사를 자동으로 만들어주거나 지역의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 줄 리 없거늘, 지역신문 1면에는 연이어 의대 유치를 호소하는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쯤에서 멈춰 질문을 던집니다. '지역'은 과연 '지역,' 그리고 주민의 관점에서 의사 증원을 논의하고 있을까요?

지역 의대 유치, 희망과 헛꿈 사이

지금까지 '의대 유치' 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의과대학은 부산 부경대, 인천 인천대, 대전 카이스트, 울산 유니스트, 충남 공주대, 전북 군산대, 전남 목포대·순천대, 경북 안동대·포스텍, 경남 창원대 등 총 11곳. 서남대의 정원을 전북 남원에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가칭)국립공공의대를 합치면 총 12곳입니다. 광역지방자치단체별로 따지면 무려 9곳에 해당합니다. 이 중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등 범 지역사회가 의대 신설 운동에 나선 지역은 전남, 전북, 경북, 경남. 모두 서울과 거리가 멀고 농어촌지역을 중심으로 '의사 부족' 문제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지역입니다.

전국 의사 10명 중 3명 가량이 서울에 몰려 있다는 점, 혹은 광역시를 제외한 전국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의 인구 10만 명 당 의사 수가 전국 평균을 밑돈다는 '수치'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의사 부족'은 지역의 현실입니다.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의료원에서는 올 초 응급실 의사 5명 중 3명이 퇴사하면서 응급실 운영을 주 4회로 단축하는 등 파행사태를 겪었습니다. 또, 더불어민주당 정춘숙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9월 1일 기준 전국 지방의료원 35곳 중 23곳에서 의사 부족으로 인한 휴진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럼에도 '의대 유치' 에 뛰어든 '지방'을 보는 시선은 복잡합니다.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의료계의 반발 뿐 아니라 의대 정원 증원에 동의하더라도 모든 지역이 의대 유치에 나서는 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역은 왜, 이토록 '의대 설립' 에 목숨을 걸고 나서게 됐을까요. 아래는 '의대 유치' 열풍에 가장 먼저 합세한 전남지역에서 발표된 건의문입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전남은 의료환경이 열악하고 의료인프라도 부족하다"

"기존 의대 정원 증원만으로는 의대 없는 전남지역에서 수도권 의사 인력 쏠림 현상과 취약한 의료 접근성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역 내에서 의사를 양성하면 의사들이 남아 지역 의료 환경 개선에 기여하리라는 전제가 숨겨져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미 이전 글(‘지역’ 의대의 두 얼굴)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지역에서 양성한 의사가 실제 지역에 남게 하려면 훨씬 더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의과대학 신입생이 의사 면허를 취득하는 데만 6년이 걸리고, 많은 의사들이 졸업 후에도 추가적인 수련 과정을 거칩니다. 결국 2025학년도부터 '의대 신설' 혹은 '지역의대 정원 증원' 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2030년은 돼야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셈입니다.

분절화된 의료와 멀어지는 주민의 삶

시간이 흘러 지역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현장에 투입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그렇게 배출된 의사들이 설령 지역 의료기관에 근무한다 하더라도 지역에서 자주, 시급하게 발생하는 질환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은 자동으로 갖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역 의료 붕괴' 가 유행하는 담론이 되면서 미디어에서는 중증질환 치료를 위해 서울로 향하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연일 보도됩니다. '원정 진료' 담론은 지역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일부 담고 있지만 동시에 중요한 지점 하나를 놓치고 있습니다. 바로 '지역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