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일처럼 글을 쓰고 있지만 오늘처럼 막막하기는 처음입니다. 하루나 이틀 전부터 쓸 내용을 생각해두는 덕에 이야깃거리가 부족하다 느낀 적도 없고 그렇다고 자료가 부족하거나 글에 대한 열의가 떨어진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은 넘쳐나고 이것저것 찾아둔 자료도 많습니다. 쓰고 싶은 글에 대한 마음도 넘쳐납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유난히 손가락이 무겁습니다. 타이핑을 치는 순간순간 이렇게 글을 써도 되는 걸까 생각합니다.
설렁설렁 쓰자고 마음먹고 있지만 글을 쓰겠다고 책상 앞에 앉으면 제 머릿속은 회사 생활하면서 글 써왔던 저를 호출합니다. 주제를 정하면서 저도 모르게 시작은 이렇게, 중간의 흐름은 이런 내용을 채워서, 그리고 마무리는 저렇게 하겠다는 구성이 머릿속에 짜입니다. 그렇게 머릿속에 들어있는 이야기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언제나 꺼내 줘, 꺼내 줘 하며 두드려대던 생각들이 오늘은 어째서인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나오려 하지 않습니다. 괜찮다고 일단 풀어내면 괜찮을 거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야기들이 머릿속 깊이 틀어박혀 꽁꽁 문을 닫고 열어주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게 흔히들 말하는 작가들의 글쓰기 슬럼프 같은 걸까요?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도 나올 텐데 하는 생각에 떠오르는 데로 가능성 있는 이유를 무작위로 적어봅니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매일 글을 써서 그런가 라는 생각입니다. 글 쓰는 근육을 키우겠다는 마음으로 백일 동안 매일 500자 이상 글을 쓰는 백일 백장 챌린지를 시작하고 벌써 59일째입니다. 덕분에 글쓰기가 익숙해지고 조금은 편해진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글쓰기에 대한 감흥이 떨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듭니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던 그 마음을 떠올려 봅니다.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반,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얼마나 많이 배울까, 성장할까 하는 기대 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흥분과 설렘이 가슴이 뛰었지요. 글 한 편 쓸 때마다, 오늘도 무사히 한 편 썼다는 안도감이 반, 이런 생각을 내가 하고 있었구나, 난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반, 그래서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글을 올리면 다른 생각을 더 많이 합니다. 더 빨리 써야 했는데 하는 불안감이 약간, 글을 쓰는 시간이 줄지 않는 걸까 하는 조급함 약간, 글을 열심히 쓰고는 있는데 잘 쓰고 있는 건지 불안한 마음이 많습니다. 오늘도 한 편 글을 썼다는 순수한 기쁨과 행복보다는 글을 더 빨리, 더 잘 쓰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과 걱정이 더 많습니다. 여기에 그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종종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 달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속상해합니다. 어떤 글을 쓸까 생각하는 대신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블로그 통계자료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합니다.
언제부터 글 쓰는 재미가 잦아들었나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이 날부터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얼추 백일백장 합평회 날짜가 발표된 이후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또 하나의 글쓰기 프로젝트의 마지막 미션—가장 자신 있는 주제에 대해 1000자 글쓰기—이 발표되었는데 그 글을 읽고 부담감이 절정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 날아다니던 생각들이 무거워지더니 그 무게가 키보드 위에 얹어있는 손가락으로 젖어듭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어째 이유가 다 나오는 것 같습니다. 글 쓰는 즐거움에 집중하기보다는 더 빨리 쓰고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그 첫 번째 이유입니다. 글쓰기에 집중하기보다는 글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이 모두 당초 생각했던 목표, 마음에 품었던 이유에서 벗어난 것들, 결국 욕심이 저의 생각을, 마음을, 손가락에 무게를 더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는데, 딱 제가 그 모양입니다. 이 세상에 널린 게 욕심내서 성공한 사람들인데, 저의 욕심은 저를 돕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가려는 저의 발목을, 허리를 잡고 엿가락처럼 늘어집니다. 진득거리는 저의 욕심이 바람처럼 자유롭게, 햇살처럼 눈부신 기쁨으로 쓰는 저의 글쓰기를 잡고 놓지 않습니다. 바닥없는 수렁 가장자리에 가까스로 버티고 서 있는 저의 글쓰기. 오늘은 겨우 전력을 다해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데 성공했지만 내일은 어떨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래도 놓지 않겠노라고, 질질 끌고 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발버둥 치며 가겠노라 다짐하는 오늘의 글쓰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