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초, 울새가 한국을 지나갈 즈음 일본 하코네로 답사를 다녀왔다. 하코네는 도쿄에서 서남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후지산 동쪽에 위치한다. 칼데라 호수인 아시노호와 하코네산이 있으며 후지산을 포함하는 후지 하코네이즈 국립공원의 일부이기도 하다.

하코네는 지질적으로도 매우 독특하다. 40만 년 전 첫 분화 이후 몇 차례에 걸친 복합적인 화산활동이 이어져 다양한 화산지형이 곳곳에 분포하며 현재까지도 화산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지질사 덕분에 하코네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식물이나 정원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코네습생화원’을 품은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온난한 해양성 기후로 가장 추운 1, 2월에도 영하 2도 아래로는 잘 떨어지지 않으며 여름 평균 고온은 25도가량으로 도쿄 같은 대도시에 비해 아주 선선한 편이다. 비가 와서 더 그렇겠지만 공중 습도가 높아 온갖 착생식물, 선태식들이 나무와 바위에 붙어 자라고 있었다. 도보로 동네를 걸어 다니면서 본 식생은 제주도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심산이 아니다. 거주지역 인근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

심산이 아니다. 거주지역 인근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

하코네신사 뒷 길. 이끼가 흘러넘친다

하코네신사 뒷 길. 이끼가 흘러넘친다

식물이 잔뜩 묻은 계단

식물이 잔뜩 묻은 계단

아무데서나 자라는 머위

아무데서나 자라는 머위

조금이라도 요철이 있는 곳에는 이끼가 핀다.

조금이라도 요철이 있는 곳에는 이끼가 핀다.

숙소 옆 녹지대에서 자라는 윤판나물아재비. 국내에서는 제주도와 울릉도, 가거도 같은 섬에만 분포하는 종이다.

숙소 옆 녹지대에서 자라는 윤판나물아재비. 국내에서는 제주도와 울릉도, 가거도 같은 섬에만 분포하는 종이다.

윤판나물아재비. 무리를 이룬 모습. 땅속 줄기를 만들어 무리를 만든다.

윤판나물아재비. 무리를 이룬 모습. 땅속 줄기를 만들어 무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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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aginella(부처손속)의 식물로 추정. 비늘이끼 또는 구실사리 종류같다. 이끼처럼 생겼지만 엄연한 여러해살이풀이다.

Selaginella(부처손속)의 식물로 추정. 비늘이끼 또는 구실사리 종류같다. 이끼처럼 생겼지만 엄연한 여러해살이풀이다.

Cryptomeria japonica (Thunb. ex L.f.) D.Don

삼나무는 하코네 지역에서 매우 크게 자란 개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대부분 350년에서 많게는 1,200살이 된 삼나무도 있다. 삼나무는 일본에서 자생하는 나무인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영국, 스웨덴, 체코, 터키, 뉴질랜드 등에 도입되어 자라고 있다. 도입된 종이다 보니 제주도에서는 베느냐 마느냐로 이래저래 논란이 많은 식물이다.

아주 큰 비와 함께 바람이 강하게 분 날.

아주 큰 비와 함께 바람이 강하게 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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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길

삼나무길

거대한 삼나무와 그 주변의 숲들을 돌본 날은 큰비가 내려서 관찰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눈에 띈 것은 거품이었다. 삼나무 몇 개체에서는 수피의 특정 부분에서 흰 거품이 뿜어져 나 빗물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국내 자료에서는 관련 언급을 찾기 어렵고 해외 자료에서 그나마 몇 가지 흥미로운 가설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수액이 강하게 내리는 빗물과 반응하여 거품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수액 또는 수지에 포함된 지방산과 염분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비가 오게 되면 일종의 비누처럼 작용하여 거품이 인다는 것. 다른 가능성은 나무의 특정 부위가 박테리아에 감염되었다는 것인데 White flux(slime flux)라는 박테리아에 감염된 나무는 수액과 함께 기분 나쁜 거품이 흘러내린다고 한다. 광릉긴나무좀벌레가 매개한 곰팡이에 감염된 참나무가 (참나무시들음병) 거품과 함께 수액을 흘려보내는 것과 비슷한 현상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확인한 거품의 크기와 흐르는 양상을 몇 가지 사진과 비교해 보았을 때 후자보다는 전자에 의한 현상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