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매일 매일 화가 나 있던 때에 뜬금없이 분노가 아닌 우울이 찾아온 적이 있다. 페미니스트 동료들과 불같은 성토의 자리를 갖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왜인지 버스 안의 공기가 평소보다 더 무겁고 갑갑했다. 알 수 없는 낯선 기분, 노여움이 아닌 깊은 우울이 조용히 차올랐다. 그러다 대뜸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됐다: 오늘 내가 이야기한 과거의 일들과 지금 버스 안의 나,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고 난 후의 미래를. ‘다 지나간다’는 건 무슨 뜻일까? 차별과 억압과 치욕의 시간이 끝난다는 것? 그게 온다면 언제일까? 그때 나는 몇 살일까? 불현듯 그런 완전한 해방은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일어날 수 없으며, 나는 죽을 때까지 이등시민일 거라는 사실을 놀랍게도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가끔 승리하겠지만 여자인 내가 이 세계의 기본적 인간형, 보편적 주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낙태죄가 폐지된 것에 축배를 들지만 애초에 그런 성취도 패배도 누릴 필요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투쟁하지 않아도 되고 존재를 증명할 이유가 없다. 그걸 그제서야 깨닫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집에 돌아온 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자 당시의 연인은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평생 느낄 필요 없는 열패감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 열패감을 모르고 사는 게 좋은 일일까?

그 '평생 느낄 필요 없는 것'은 생득적 특권인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이입할 능력을 결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비장애인인 나는 장애인들이 겪는 일상적 고난을 결코 아는 체할 수 없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어떤 교통수단이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가 없고 문턱이 있는 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 나에게 당연한 것들을 박탈당한 일상적 부자유가 어떤 것인지 헤아리려는 시도는 머리에서 간신히 이루어질 뿐이지 직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트랜스젠더의, 빈곤계층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피할 수 있고, 그 차별을 실감할 능력이 없다.

그러면 그것을 특권으로 삼고 기뻐할지, 한계로 삼고 부끄럽게 여길지의 문제가 남는다.

페미니스트 여성으로 살아가는 데 조금 더 편안하고 느긋한 태도를 갖게 된 것은 그날의 열패감 덕분이다. 영원한 이등 시민이라는 자각,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한계에 대한 의문 이후에 일등 시민에 대한 선망을 버릴 수 있었다. '보편 인류'라는 집단 밖에 위치할 때,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 나의 자리를 자각할 때, 위가 아닌 옆과 아래를 돌아볼 수 있다. 연대를 구하는 당사자일 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눈이 조금 더 밝아진다.

박탈된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힘은 보편에 소속될 자격보다 귀한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내가 약자가 아닌 강자의 자리에 위치할 때, 그 자리에 머물면서 그 높낮이를 지속하는 기득권에 일조할 때, 기쁨이 아닌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들과 더 가까이 있고 싶고 무엇을 해야할지를 같이 고민하고 싶다.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 고발자의 차별 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은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고마운 제안이다. 막막해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https://petitions.assembly.go.kr/status/onGoing/C25F4B51E8D2312DE054A0369F40E84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