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협력 일자리 생태계 개선을 위한 두 번째 토론회 ‘세대를 잇는 질문’ 후기

<aside> 🪜 경력사다리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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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흔히 이야기하는 ‘경력사다리’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경력을 쌓으며 어느새 지금의 연차가 되었는데, 남들이 가는 정석적인 길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었다. 이제 와서 경력사다리를 알게 되었다고 해도 신입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저 내가 걷던 길을 계속 걸어갈 뿐이다. 다만 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내 가치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출처: 코이카 블로그 소식 (https://blog.naver.com/prkoica/223700277856)

출처: 코이카 블로그 소식 (https://blog.naver.com/prkoica/223700277856)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들어오고 싶었으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던 때 석사를 시작했고, 코로나가 터지면서 풀타임 학생이었지만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들었다. 돈만 많이 내고 학위를 사는 기분이 들었고, 여전히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막연히 NGO는 나를 필요로 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YP를 지원했을 때, 경쟁률이 거의 70:1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단 한 군데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마 코로나가 터지면서 해외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국내로 들어왔기 때문에 국내 일자리에 지원자가 몰렸던 까닭일 것이다. 그리고 한 번쯤은 들어봤을 대형 NGO에 지원했기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YP는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구나 하는 생각으로 그 뒤에는 쳐다도 보지 않았는데, 사실 YP는 인턴십 제도가 맞았다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나고서야 체감할 수 있었다.

당시 경쟁률을 찾기가 어려워 ALIO에 남아있는 한국교통연구원 2021년 상반기 채용정보를 가져옴 (출처: ALIO)

당시 경쟁률을 찾기가 어려워 ALIO에 남아있는 한국교통연구원 2021년 상반기 채용정보를 가져옴 (출처: ALIO)

다행히 어떤 한 NGO에 바로 정규직으로 취직할 수 있었는데, 대학원과 병행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한 학기를 쉬게 되었다. (다음 학기부터는 쫓겨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토요일 수업을 몰래 다녔다.) 그곳에서 열악한 환경의 혹독함을 경험했다. 바로 위 사수인 팀장님도 자신을 갈아 넣으며 매일 야근하고 주말·공휴일 가릴 것 없이 일하셨기에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니 그저 버티기만 하다가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그마저도 몇 번이나 반려를 당했다. 사직서가 반려된 경험이 없어 법적으로 불이익을 당할까 전전긍긍했는데, 공사모 덕분에 무사히(?) 퇴사할 수 있었다.

출처: 티스토리 블로그 '우주의 중심' – “퇴사짤 100종”

출처: 티스토리 블로그 '우주의 중심' – “퇴사짤 100종”

지금은 사회적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아기를 낳고 6개월 차에 취직한 것이라 처음부터 재택과 유연근무를 조건으로 일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남편 직장 때문에 지방에 살고 있지만 재택과 유연근무로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게다가 일을 잘 해낼 때마다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칭찬과 격려, 그리고 상여금까지 챙겨주시니 나로서는 최대한 오래오래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내가 지금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고 해서 국제개발협력 생태계의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육아와 일로 지친 엄마들이 줄지 않는 집안일을 외면하다가 결국 언젠가 한 번에 해치우듯, 이 생태계의 문제 또한 지금 당장은 내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나의 문제로 다가올 것을 알기에 외면할 수 없다. 예전에는 잘 몰라서, 혹은 애써 외면해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면 이제는 현실을 똑바로 보고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aside> <img src="/icons/rainbow_red.svg" alt="/icons/rainbow_red.svg" width="40px" /> 경력사다리보다는 정글짐. ‘실패와 멈춤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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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대로 알아야지,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목소리를 내야지 하고 다짐했는데, 첫 번째 발표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실을 외면하면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가 불가능하단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울림이 강력했다. 나도 이전에는 몰라서 그랬든, 알아서 그랬든 이 현실을 외면하던 사람 중 하나였으므로. YP도, 해외봉사단도, PAO도, 코이카나 KCOC 활동도 해보지 않은 나는 늘 ‘경력사다리에 어떻게 올라가야 하나’ 고민하곤 했다. 그런 내게 “사다리보다 정글짐”이라는 비유는 큰 위안이 되었다. 사다리에 오르지 못했다고 해서 이 분야에 속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나라는 개인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출처: Gemini가 만들어준 정글짐

출처: Gemini가 만들어준 정글짐

정글짐에서는 어느 모서리에서도 시작할 수 있고, 누구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게 아니다. 심지어 그물망도 있고 모래바닥도 있어서 떨어져도 안전하다. 실패해도 되고 멈춰도 되는데, 때로는 위에서 동아줄을 내려 끌어 올려주기도 한다. 있던 정글짐에서 다른 정글짐으로 이동해도 된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다. 우리 생태계가 이런 곳이라면, 이전에 어떤 일을 했던지 간에 거기서 시작하면 된다. 중간에 임신·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지쳐 쓰러져도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올라갈 수 있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다만 이 꿈만 같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실현되려면 ‘그래서 누가? 어떻게?’ 그것을 실현할 수 있을지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