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자신이 먼저인 나의 아내, 그렇지만 본인은 아니란다. 자신보다 나를 더 많이 생각한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기억이 없는데 당당한 아내. 말도 안 된다, 언제 네가 그런 적이 있냐고 피식 웃는 내게 아내는 정색을 하며 말한다. 매일 밤 그렇게 배려를 받는데도 모르다니 나야말로 둔감한 남편이라고 말이다. 내가 무슨 배려를 받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갸우뚱한 내게 답답하다는 듯, 아내는 당당히 말한다, “내가 침대 어디에서 자는지 잘 생각해 봐.”

아내가 어떻게 자냐니, 잘 자는 거 말고 뭐 다른게 있었나? 남부러운 거 별로 없는 나이지만 잠자는 아내는 꽤나 부럽다. 이제 와 얘기지만, 신혼여행 갔을 때, 침대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드는 아내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지. 함께 꿀 같은 밤을 보내라고 있는 신혼여행, 씻고 나와보니 아내는 쿠울 쿨 잠들어 버렸다. 그럴 수도 있지, 결혼식 하느라 피곤했겠지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머리를 침대에 대기만 하면 하나 둘 셋 넷 다섯, 오초를 세기 전에 곯아떨어지는 아내. 그렇게 신혼여행 첫 일주일이 흘러갔었다. 일단 잠들면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누운 자세 그대로 고이 자는 아내의 모습도 참으로 이상했다. 오 초면 잠드는 기적의 수면법을 더해서 7대 아내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혼자 이름 짓기도 했었지.

암만 생각해도 모르겠는 나, 답답한 듯 아내는 한 마디 한다, “침대 모서리!” 나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증거로 당당하게 내미는 것은 침대 모서리 자기란다. 잠자기 어려워하는 나 잘 자라고, 조금이라도 더 넓게 자라고 본인은 침대 가장자리에 붙어 좁게 자는 거란다.

그러고 보니 떠오른다. 또 하나의 특이점, 아내의 침대 모서리 자기 신공. 방 한가운데 떡 하니 놓여 있는 우리 집 침대. 넓은 침대 한가운데를 두고, 아내는 한 뼘의 여지도 없어 보이는 침대 끝자락에 누워 잔다. 옆으로 돌아누우려 살짝만 몸을 돌려도 바로 떨어질 침대 가장자리에 딱 붙어 잠을 잔다. 두 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올린 채 미동도 않고 골골 잘도 자는 아내. 우리 침대는 그렇지 않아도 꽤 높은데, 혹시라도 떨어지면 놀라고 아플 텐데. 정자세로 움직임도 없이 자는 아내, xx 년 결혼 생활 중 떨어진 한 번 없다.

본인이 제일 소중하고 대놓고 말하는 아내, 그렇지만 남편인 나도 꽤 사랑한다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 대화 이후 매일 밤, 그리고 아침, 침대 모서리에 매달려 같은 자세로 자고 있는 아내를 볼 때마다 그래, 나를 아끼긴 하나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넘어갔던 아내의 침대 모서리 자기 신공, 요 며칠 전 드디어 그 비밀을 풀었다.

저녁 먹으러 오라던 장모님 전화를 받고 아내와 오래간만에 장인 장모님 댁에 방문했다. 장모님과 아내가 저녁 상을 차리는 동안 엉거주춤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색함을 모면하려 괜히 장인어른을 찾아 방문을 열었다. 살짝 열린 문 사이로 장인어른, 두루마리 휴지를 무심히 베고 두 손을 배에 올린 채 세상모른 채 주무시고 계셨다. “에구머니, 저 양반이 피곤하셨나 보네,” 민망해하시는 장모님이 방문을 서둘러 닫으며 한마디 덧붙이신다. ‘저 양반은 궁상맞게 늘 방구석에 꼭 붙어 잔다니까. 한번 잠들면 저렇게 업어가도 모르게 주무셔, 원, 쯧쯧쯧...’

답답하지도 않으신지 벽에 딱 붙어 주무시는 장인어른. 자는 모습이 영락없이 아내 자는 모습의 복사판이었다. 아아, 가족 내력이구나. 잠자는 모습도 보고 배울 수 있구나. 방 한가운데 놓인 침대, 벽이 없으니 아내는 침대 가장자리에 붙어 자는 거였구나.

나를 사랑해서 가장자리에 붙어 잔다더니 개뿔, 아내는 본 대로 배운 대로 자는 거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는 아내는 참으로 일관되다. 오늘 밤도 아내는 침대 가장자리에 딱 붙은 채 잘도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