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에 눈이 떠졌다. 아침마다 알람에 짜증내며 한숨부터 쉬며 일어나 복작복작 출근준비에 정신없던 날들과 달랐다. 여유롭게 맞이 한 아침에 창문에 스며든 어스름한 빛이 나를 일찍 집을 나서게 만들었다. 늘 출근하던 길은 자전거 페달을 천천히 굴리면 20분가량이 걸리는, 빌딩숲을 가로질러 갔지만,오늘은 강변의 산책로를 따라 조금 돌아가다보니 45분가량이 걸렸다.
자전거를 타고 햇빛을 고스란히 내 몸으로 받아들이던 중, 고등학교때 자전거로 등하교를 하셨던 선생님이 기억이 났다. 그 선생님은 국어선생님이자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늘 점잖은 모습으로 말의 억양에 높낮이가 없으셨고, 인자한 웃음을 가지신, 날씨가 달라져도 카라티의 팔 길이만 바뀌었을 뿐, 카라는 없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전형적인 50대 선생님룩을 늘 입으셨다.
우리 반은 일반계 고등학교의 문과와 예체능의 혈기넘치던 고등학교 2학년 남자들만 모여있는 가장 시끄럽고, 수업을 듣는 학생이 가장 적지만, 가장 단합이 잘되고 승부욕이 넘치는 반이었다.
항상 우리는 선생님께 호기심 넘치는 질문에 짓궂은 장난을 섞어 말하곤 했지만, 선생님은 늘 우리의 장난을 편안한 미소로 응수하셨다. 그러다 질문이 너무 많거나 너무 짓궃은 질문이면 가끔씩 하이킥을 날리시기도 헀다. 그 중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질문은 선생님께 왜 모범생이 가득한 외고에서 우리 학교에 오셨냐고 물어봤을 때 자전거길이 잘 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취미가 싸이클, 등산이던 선생님은 항상 싸이클복으로 등하교를 한다고 하셨지만 학교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순 없었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셨기 때문이셨다. 다른 선생님이 말씀하신 바로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걸 절제하시고, 야근을 늦게까지 하셔도 늘 아침 6시전에 학교에 도착하신다고 하셨다. 이 때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선생님은 수업에 들어가기 앞서 늘 시 한 편과 난을 칠판에 그리곤 하셨다. 수업이 지루해서 잘 듣진 않았지만(죄송해요..), 시는 늘 봤던 것 같다. 수업을 안들을거면 시라도 보라는 선생님의 생각이었을까? 우리에게 예술을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길 바라셨던 노력이었을까?
하루는 연극영화과를 꿈꾸던 몇 명의 친구가 대전의 한 소규모 극단의 한 홀에서 연극을 한다고 했다. 시간은 평일 7시.. 보통의 고등학생이면 야자를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 반은 선생님이 나서서 오늘 야자 출석체크는 연극을 하는 홀 앞에서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출석체크도 안하고 어느정도 왔는지 확인만 하고 연극을 보셨다. 연극을 준비하는 친구가 우리 반 대부분을 데려온 선생님께 무한감사를 했다고 들었다. 이 날 우리학교의 30개 반 중 유일하게 교실 불을 끄고 자물쇠를 6시에 잠근 반이 되었다.
‘오버워치’ 라는 새로운 게임이 나온 직후 남자만으로 이루어진 우리 반은 난리가 났엇고, 하루종일 게임얘기만 했었다. 모두가 어느정도 실력을 키웠을 즈음, 우리는 아주 획기적으로 놀기로 계획했다. 약 30명이던 우리반은 6명이서 한 팀을 이뤄 4개의 팀을 만들었고, 일주일간의 팀별 연습기간을 거친 후, 대회를 열기로 했다. 우리끼리의 게임대회는 날짜를 정하는 게 고역이었다. 평일은 4시에 본 수업이 끝나고 보충수업을 받고, 야자를 하는 친구들, 저녁에 예체능 학원을 가는 친구들이 많았고, 주말엔 각자의 약속으로 바빴다. 많은 토론(쉬는 시간 10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거쳐 나온 결론은 4시에 본 수업이 끝나자마자 보충수업을 째고 다같이 pc방으로 달려가는 거였다. 재미로 했던 말이 단합심과 엄청난 실행력, 스릴감의 조화로 실재가 되었고, 다들 조금이라도 빨리 게임을 하기 위해 pc방으로 뛰어가 컴퓨터로만 가득한 공간을 아는 얼굴들로 가득 채웠다.
이 사단이 난 다음 날 쫄보였던 우리들은 얼마나 혼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아침 조회시간을 기다렸다. 반 단체로 화장실 청소를 하려나? 운동장을 뛰려나? 하던 많은 우려와는 다르게 선생님은 평소와 같이 조회를 하고 나가셨다. 모두가 생각한 반응과 달라 의아했다. 이 날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정말 궁금하다.. 나중에 만나면 꼭 물어보고싶다.
출근길에 자전거타면서 했던 생각을 글로 쓰니까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꽤 어렵지만 글로 보니까 색다름을 느낀다. 생각을 글로 변환하는 작업을 자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