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략)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불현듯 그런 마음, 혹은 과정을 '사랑'이라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랑'이 되게 대단한 건 줄 알았다. 그러니까 '거창한 것'만이 사랑인 줄 알았다. 그래서 줄곧 어렵다고 말해온 것이다. 어디서부터 헤아려야 할지 모르겠고, 굳이 내 입으로 서술하지 않아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많았다.
그런데 말이다. 이 사랑이란 건 내가 당신과 다른 사람이란 걸 알려주는 시선이고, 관심이고, 사유의 방식을 일컫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상으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다가가는 일이다. 존중하는 일이고, 무심코 지나가려던 것도 살갑게 바라보는 시선이다. 때로 그것은 공존하는 형태로의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 기쁨을 다른 이도 그들 삶에서 누릴 수 있도록 일러주려는 세심한 마음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사랑은 아주 사소한 세상부터, 때때로 형언할 수 없는 범위의 세상까지 보듬어주려는 마음의 원동력인 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이 결국 내가 인식한 세상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자 한 세상의 범위를 살아가는 것일 테다. 각자가 사랑하는 것을 향해 살아가며 일어나는 다채로움이 모여 우리가 공존하는 세상의 밀도가 연주되는 것이고. 지금의 나 역시 새로운 음을 찾아, 그 울림을 찾아 조금씩 자라나는 거겠지. 한 뼘 더 호흡하기 위해 햇볕을 좇아가는 식물들처럼.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이 된다. 오롯이 자신이 머금은 것으로 영글어진 존재. 이처럼 빛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의 맞물림. 단일한 음들은 기어코 머물고 싶은 화음을 지어내고, 모인 화음은 서로의 시선 속에서 영혼에 깃드는 음악이 된다. 그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사랑, 그런 이들이 공존하는 것으로서의 사랑은 그러한 모습이 아닐까.
내게는 여전히 어려운 고백이다.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걸까. 잘 모르겠다. 다만 이게 첫걸음의 서투름이라면 조금은 사랑해 주고 싶다고 고백을 덧붙이고 싶다. 나의 언어가 지닌 시선이 바라보고자 하는 소망이 어느 정도는 거기까지 가닿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