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나에게 여행의 시작은 도착지에 두 발을 딛고 여기 어떻게 오래 머무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점이다. 정해진 일정에 몇 개의 도시를 가보고, 어느 가게들을 어떤 스케줄로 다 들려볼지 딱히 관심이 없다. 계획을 짜기가 싫은 것이 아니다, MBTI가 P로 끝나서가 아니다.
</aside>
여행할 때 내 추구미는 ‘동네 사람’이다.
구글맵 대신 돗자리와 빵을 챙겨 공원으로 걸어가고, 잠옷 바람으로 터덜터덜 골목을 돌아다닌다. 여기가 어디지? 싶다는 건 낭만이고 3분 거리 슈퍼에 30분 만에 도착하면 청춘이다. 이 식당에 처음 온 것 같은 사람이 있으면 인사를 건내며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을 표현해줄 수 있다. 실수로 부딪히거나 다른 사람의 길을 방해하게 됐을 때 오가는 사과와 감사로 세상이 참 따뜻하고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여행객을 노리는 소매치기에 한 번도 당해본 적 없다는 게 그렇게 뿌듯하다. 난생처음 뮌스터(독일)라는 도시를 갔던 때 걷던 중 누가 길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날이 떠오르는 지금도 짜릿하다(positive). 거기 사는 사람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는 게 대견하다.
그게 내가 그리는 동네 사람 이미지이다. 서 있는 그곳이 익숙하여 긴장감 없이 여유로워 보이고, 이 근방에 뭐가 있는지 얼추 꿰뚫고 있으며 이 빵집보다 길 건너 빵집의 치아바타가 더 쫄깃하다고 말할 듯한.
일상에서는 ‘동네에 못 있는 사람’이다.
금방 도착하는 집 앞 카페보다 몇 정거장이라도 더 멀리, 안 가본 행정동에 도착해야 집에서 나온 기분이다. 졸업한 초중고가 도보 15분 반경 안에 있을 만큼 한 동네에서 계속 살았다. 어느 자리는 매년 점포가 바뀌고, 여기 사장님이 이전에 트럭 장사를 하다가 가게를 내셨다며 읊을 거리도 많다. 아 참 집 근처 BBQ보다 옆 옆동 BBQ가 더 바삭하다.
동네 친구들은 “안녕^^” 대신 “너는 도대체 또 어딜 갔다 온 거냐?”고 안부를 묻는다. 이쯤 되니 나는 설명 대신 하루를 보여줄 사진을, 친구들은 ‘오 어딘지 전혀 모르겠지만 아무튼 카페구나’ 또는 ‘이건 또 누구네 아파트 담벼락이니’ 같은 말을 준비해 나간다. 대답을 돌려쓰기 하는 친구도 한 명 있다.
본가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디벨로핑룸, 커피화 로스터스가 있다. 타지에서도 찾아온다는 카페들이다. 집 앞인걸 뻔히 알지만 차로 20-30분 떨어진 2호점을 더 찾게 된다. 누군가 ‘굳이’라고 말한다면 “굳이 난 즐거웠다”고 어깨를 으쓱할 테다.
나는 지도에 가보고 싶은 곳을 카테고리별로 나누어 저장한다. 식당-커피-브랜드-로컬-자연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인천 시민 시절에도 광주광역시에 많은 핀들을 꽂아두었다. 당시(2020) 호주에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광주에 가면 쓸 거라고 생각했다.
예정했던 시기에 역사에 기록될 게 분명한 범지구적 바이러스를 만났다.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는 거라고 생각하려고 애썼고 여행하듯 살면 된다고 나와 타협했다.
익숙해지지 말고 당연해지지 말고, 사람은 태연해보이나 실은 주변 모든 게 신기한 마음으로 살지 뭐. 최면을 걸다시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