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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함께 지구를 뒹굴며 돌보는 힘, 기후 정의 창작집단 ‘콜렉티브 뒹굴’

<aside> 💡 작가님이 지금까지 해오신 작업 중 환경 이슈와 가장 밀접했던(또는 대표적인) 창작 또는 교육 활동은 무엇이 있었는지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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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아르코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의 라이브 아트와 백남준아트센터, 아트선재센터, 아르코미술관이 공동주최한 <다정한 이웃>의 ‘플러그 인’에 참여한 <배팅 로얄: 더 나은 미래 편>입니다.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였는데 관객들이 각 국가의 환경 및 기술 R&D 담당자로서 기술 입찰을 하러 온 콘셉트였습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돌파하기 위해 정말 중요한 기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감각적으로 사유하고자 하는 퍼포먼스였어요. 더 구체적으로는 스마트폰으로 미래에 투자하러 왔던 관객들이 개똥을 처리하는 일을 함께 실습하고 배우도록 구성한 작업입니다.

<aside> 💡 답하신 작업을 진행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 작업을 통해 관람객/참여자들이 공감하길 바랐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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뒹굴은 기후위기가 다른 존재에 대한 타자화와 착취로부터 발생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또 다시 기술-테크놀로지가 이야기되는 현실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뛰어난 기술이 도입되느냐 문제가 아니라, 기존 관계 맺기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환경을 보호 또는 파괴할 수 있는 존재라 믿는 것 역시  비인간 존재들을 대상화시키는 시각이며 이러한 사고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공존과 돌봄, 소통의 감각을 회복하고 이에 필요한 기술(스킬 또는 테크닉)을 길러내는 것이 기후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시사점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또, 기후위기가 워낙 거대하면서도 가까운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사유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지점이 있단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환경 문제를 ‘불타는 지구’나 '집을 잃은 북극곰’처럼 극단적인 이미지로 소비하거나 거주민이 아닌 감각으로서 바라보아선 안 된다고 말입니다. 촉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여러 연결망 속에 있는 ‘우리’로서 환경 이슈를 감각할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aside> 💡 환경 이슈와 밀접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부딪히는 내/외부적 어려움은 무엇이 있습니까? (예시: 사람들의 선입견, 작가 개인의 가치관 갈등, 활동을 위한 자원 부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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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창작 방법론에 있어서의 기후정의적 실천이 가지는 금전적/시간적 소모가 매우 크다는 점 (관습적인 방식을 벗어나는 시도면서, 예술 이외의 전문 분야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2. 해외 사례를 비롯한 관련 자료 아카이빙, 방법론 축적 등 창작 과정 및 방식에서의 실천 노하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예술인들의 정보 공유의 장 등이 현재로서는 몇몇 예술인 개인에게 몰려 있다는 점. 저도 이를 가진 사람 중 하나인데, 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시도는 “예술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원사업에선 늘 떨어지거나 소액 다건의 리서치만 받을 수 있음. 그런데 사실 이건 개인이 할 수 있는 차원의 일이 아니라 다소 버거움을 느낌.(뒹굴은 <기후위기 예술인 세미나>를 통해 이를 자체 기획&제작으로  시도한 바 있음. 8회차씩 총 2기를 진행했고 참여자 만족도는 매우 높았으나 팀원들의 자발적 무보수 노동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지속성을 가지기 어려워 중도 포기함)
  3. 기후위기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이를 다루는 작업을 세팅할 때 도움받는 시스템들(지원사업, 레지던시 등)이 여전히 관습적이기 때문에 실제로 예술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작업들에 가닿지 못하고 있다는 점.

<aside> 💡 최근 몇 년 동안 기후 위기 및 환경 이슈와 관련한 창작 활동/교육/워크숍 등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과 관련 활동들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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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만큼은 ‘지원금 사냥꾼’들의 소재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지원사업에서 예술인들에게 환경을 보호하는 전략을 내놓으라는 식의 방식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성평등 같은 이슈는 그렇게 흘러간 측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기 때문이고, 기후 파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체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술계 또는 예술 지원 체계 내에서의 그린워싱을 심각하게 우려합니다.

기후위기에서만큼은 예술인이 선전선동의 나팔수 역할을 한다는 명목 아래 기존의 환경 파괴, 타자 및 자기 착취를 반복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예술인 또는 팀 개인들에게 환경을 지켜가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제도들이 생기는 것도 반대합니다.

<aside> 💡 환경 이슈와 관련하여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창작 또는 예술 교육 활동이 있으십니까? 있다면 대략 어떤 내용(또는 방향)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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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문제는 개인이 윤리성을 발휘하여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문명과 사회의 구조를 바꾸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가장 크게 무력감이나 죄책감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완전할 수 없는 틀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기하는 이들도 많지요.

이러한 감각을 다루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