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주제전 <만화, 시대의 울림> 전은 만화평론가 백정숙 선생님과 내가 공동 큐레이션을 맡아 진행한 전시다. 이 가운데 내가 맡은 것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만화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살피는 연표와 그에 따른 원고, 그리고 전자액자용 영상이었다.
원안을 넘어 큐레이터 직함을 단 전시로서는 처음이었다. 만화가 사회 문제를 어떻게 담고 또 비추어 왔는가를 이야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박근혜 정권기이자 세월호가 침몰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시기에 공공기관의 주제전으로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것이 곧바로 당시 정권과 그 아비라 할 박정희 정권기를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인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전시의 도록은 내가 서술한 부분이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정당했고 비매품처리되었다. 즉, '나 때문에' 나만이 아닌 다른 이들의 글까지 졸지에 대중 앞에 공개되지 못했다.
이 때엔 도대체 이해가 안 갔는데 내 이름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었고 참여한 잡지가 통째로 지원 배제되었던 걸 보면 그냥 여러 생각할 것 없이 '그런 시기였다'로 생각해도 될 법하다. 어쨌든 이 전시는, 결과적으로는 전시에서 진짜로 보여주고자 한 바를 당시 정권과 이에 어느 정도는 숙일 수밖에 없던 기관이 '완성'했다 할 수 있다. 시대를 조명할 때는 가끔 이렇게 악인들이 스스로 완성자의 숙명을 달성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내가 피해자가 되는 건 얄궂지만 말이다.
당시 전시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박물관 전시동 1층의 로비에서 열렸는데 공간을 굉장히 비틀린 형태로 제공했기 때문에 구성에 여러모로 애를 먹었다. 시대적 흐름을 이동 순서에 맞춰 제공한다는 발상이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았다'. 만화가 대사만으로 전달하면 안 되듯 전시도 글로만 전달하려 하면 안 되는 것인데, 이제 와 생각하면 내 말이 너무 많았단 사실을 반성하게 된다. 하지만 어쨌든, 그 시기 한 차례 묶어냈어야 할 화두였음은 분명했다. 치러야 할 피곤한 뒤치다꺼리가 좀 많이 있었을 뿐.
작가분들이 직접 모든 디자인을 맡으셨던 2009년의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전과는 달리 2014년 전시는 디자이너로 김덕겸 님이 함께 참여하셨다. 공간 디자인을 3D 모델링 프로그램인 스케치업으로 진행해 내용을 공유할 수 있었는데, 전시가 곧 인테리어이자 건축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어찌 보면 만화 또한 공간의 분할과 배치고 보면, 건축과 만화는 많은 부분에서 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또 한 가지 숙제가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