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2021년 2월 9일이고 나는 지난 삼일간의 동묘앞역 지하철 사회복무요원 근무를 마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내일과 내내일은 휴무다. 나는 스물여섯 살이다. 내가 요즘 지하에서 그리고 지상에서도 많이 고민하는 것은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에 대한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선택지들 중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두 가지를 추린 것 같다.
두 선택지 모두 돈은 다른 방식으로 벌어야 한다. 나는 유산을 물려받는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아주 적은 수의 시를 발표했고, 한 번의 퍼포먼스를 실연했다. 훈련소에서 나는 그동안 문학과 미술을 비교하며 생각해왔던 것을 정리하는 짧은 글을 노트에 써두었고, 훈련소에서 나온 뒤 그것을 옮겨 적었다.
절망
미술: 분열을 당연하게 생각함
문학: 분열에 괴로워함
희망
미술: 분열과 상관없는 세계를 만듦
문학: 분열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마치 분열이 없는 것 같이 됨
내가 생각할 때 꽤 마음에 드는 정리다. 나는 요즘 점점 더 두 가지를 많이 비교해보고 있다. 미술과 문학. 내가 자주 생각하는 한 시인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가장 이상적인 문인의 생애를 생각해보면, 미술평론가로 데뷔를 한 다음 시를 쓰며 이름을 알리고 소설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 것 아닐까. 이것은 아무래도 베케트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그 시인은 시인으로서 많이 유명했는데 미술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린다고 하고 그리지 않는다,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이 뭘까, 나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정말 오랫동안 생각했고 언젠가 그 답을 생각해낸 적이 있다. 그게 지금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시인은 시를 일종의 문화유산으로 생각하고 시를 쓰는 자신을 무형문화재로서의 예술가로 받아들인다고 나는 이해했는데, 그리고 그런 태도는 시인 개인이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 가꿀지에 대한 답으로 충분히 고를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무형문화재가 다른 분야에 손을 댈 때 아무래도 자기가 원래 하는 것보다는 좀 서툴고 투박할 경우가 많을 것인데 그것을 자신이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뜻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형문화재들은 보통 이런 말을 많이 한다. 나는 아직도 배운다고. 그러므로 아마추어리즘과 관련해서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있을 것이다. 별 것은 없겠지만, 지하철 기다리는 시간에 사탕을 먹는 대신 하나.
나는 문학가, 특히 소설가를 분류할 때 크게 세 부류로 소설가를 나눈다(다시 보니 크게가 아니라 아주 작게 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