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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양승현'을 소개해주세요.

음... 내가 현재 처해있는 환경에서 나를 소개한다면, 오랫동안 강의를 하면서 여러분들과의 여러가지 경험 속에서 여러분들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기억에 남는 그런 교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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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학시절을 보내셨나요?

저의 대학시절은 지금하고 제도가 조금 다릅니다.

저는 1차 대학에서 떨어져서 당시만 해도 후기인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 철학을 복수전공 하였습니다.

저희 때는 70년대 후반이어서 시대적인 상황이나 여건상 그렇게 학교 학업에 전념하거나 그러기 힘들었습니다. 뭐 시위도 있었고, 또 수많은 집회들이 있었고.

그러나 그런 집회와 시위 속에서도 각각 나름의 길을 고민했습니다. 시대적 고민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길을 고민하고. 그 속에서도 젊음으로서의 낭만이랄까? 그런 걸 잊지 않고 추구해보려고 했던 그런 젊은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럼 혹시 대학생 때 동아리 같은 활동을 하신 것이 있으실까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강의라던가 교수님들과 친해지는 그런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학생활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동아리도...그때만해도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아서 특별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운동을 좀 하고 싶어서 검도부를 좀 기웃거렸다가 오래 못했고,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흥사단 아카데미 그것도 약간 좀 하다가 오래 못하고 군대에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런 아쉬움들이 많이 남는 그런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20대에 가장 행복했던 사건?

이것도 역시 그 시대를 제가 다녔던 그 70년대를 벗어날 수 없는데, 그 때만해도 여행이 자유롭거나 뭐 그렇지 않은 때였으니까, 그런 걸 좀 감안해서 들어야합니다.

저는 억압되거나 규율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때가 이렇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 당시 4박5일로 낡은 장비와 낡은 신발, 의복들을 챙겨 떠났는데요.(지금 같은 질을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은 산길을 따라서 지리산을 천왕봉에서부터 친구들 5명이서 이렇게 종주했던 그 기록들, 경험들이 가장 행복했었습니다.

천왕봉까지 올라가서 밥도 해먹기도 했었죠. 사실 지금과 같이 잘 되어있는 시설이 아니고, 그땐 굉장히 길도 잘 잃어버렸어요. 산속에서 2시간, 3시간씩 공포에 휩싸이고, 또 간신히 정규 등산로를 발견해서 나오기도 했죠. 그 때만해도 산에서 인삼이라든가 산의 나물이라든가 이런걸 채취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a.k.a심마니)이 많아서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길로 들어가게 되면 정규등산로를 잃어버려서 2시간, 3시간동안 길을 못찾고 헤메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