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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yeojuneyoon.com

<우리의 일에 대하여> 인터뷰 프로젝트에서 첫 번째 만나볼 분은 윤여준 님입니다. 저희 페이지 상단의 일러스트 이미지를 만들어주신 분이기도 한데요. 옆에서 보면 여준 님은 전시 기획 일뿐만 아니라 슥슥 그림을 그려서 그림책을 내고, 여성 직업인을 인터뷰한 웹진을 만들기도 하고, 최근에는 문화재단에서 일도 하는, 그야말로 반짝이는 재능을 많이 가진 사람처럼 보였는데요. 그런 여준 님은 그동안 어떻게 일하셨는지, 일에서 어떤 고민과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인터뷰는 한 차례 만나서 이야기 나눈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서면으로 수정 보완되었습니다. (2020.7.19.)

저는 요즘 문화재단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월화수목금 10시부터 7시까지 재단에서 일하고, 나머지 시간엔 (훗날의 전시 기획을 위해) 공부를 한다거나, 일러스트 알바를 한다거나, 개인 프로젝트를 하며 현재의 본업 외의 다른 일들을 병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2016년도에 을지로 세운상가에 위치한 서점과 공간의 운영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미술 일을 시작한 거 같아요. 어렴풋하게 기획자가 되어야겠다,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때 같고요. 그 이후, 잠시 휴학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얼마 전까지 학업과 일을 겸했어서 풀타임으로 일을 하진 못했었고, 프리랜서로 일이 들어올 때마다 일을 했어요. 운이 좋게도 지인들의 소개로 일을 얻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주로 한 일은 전시나 행사 기획 보조(코디네이터)였어요. 그리고 종종 지원금을 받아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어서, 미술 관련 일을 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또 모친이 미술을 전공하여 미술학원을 운영하다 보니, 유년시절을 미술학원에서 보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겐 미술 일을 하게 된 계기보다, 미술에서 작품 창작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더 중요한 거 같아요.

대부분의 미대생이 그렇듯, 저도 작가가 되고자 대학에 들어갔는데, 1학년 1학기 때 당시 강사 선생님이 한 말이 꽤 인상 깊었어요. 정확한 워딩은 잘 기억 안 나지만, “너네가 모두 작가가 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미술하면서 눈을 기르면 적어도 더 좋은 것을 소비하는 감각이 있는 삶을 살 것이다” 의 맥락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작가가 되겠다고 입학한 대학교 1학년생에게 한 말치고는 회의적이네요..^^;; 하지만 전 그 말을 듣고미술해서 꼭 작가가 되지 않아도 감각을 키울 수 있으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이걸 이용해서 꼭 작가가 아니더라도 다른 일을 해도 되겠다! 는 용기를 얻은 거 같아요.

제가 찾은 미술창작이 아닌 다른 일은 미술을 공부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고, 현재는 문화 행정 일까지 하고 있는데, 미술에서 키운 감각을 요긴하게 써먹는 거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미술을 직접 창작하지 않을 뿐이지, 꾸준히 미술과 관계하며 일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아요.

물론, 가끔 다른 일로 도망칠까 싶은 마음이 들곤 하는데, 사실 미술집단의 사람들이 좋아서도 또 잘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운이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제 주변의 가장 “잘”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미술 집단이거든요. 합리적으로 생각하며 건강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비율적으로 많은 거 같아서 이 집단을 떠나는 것이 더 쉽지 않은 것도 같고요. 그렇게 계속 미술 일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사실 딱 생각나는 한 가지의 일은 없는 거 같아요. 그럼에도 뽑아보자면, 작년에 했던 일들이 제겐 좋은 기억으로 많이 남아있는데요. 좋은 사람들과 일하면 이렇게 일이 즐거울 수 있구나! 하는 감정을 작년에 처음 느껴본 거 같아요. 사실, 제 친한 친구가 일반 사기업을 다니고 있는데, 그 친구가 자신의 팀 동료들이 너무 좋아서 회사 다니는 게 즐겁다고 하는 말을 했었거든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저도 그런 동료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작년엔 친구의 경험에 처음 공감해볼 수 있었어요. 세월호 5주기 추념전을 만들 때에도 그랬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일할 때에도 좋은 동료들을 만나서 재미있게 일했어요. 특히 여성영화제는 미술계에 밀접하지 않아서인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일했던 거 같아요. 미술계 안에서 미술 일을 할 땐, 할 수 없어도 더 잘하기 위하여 무리해서 노력했다면, 여성영화제에서는 미술과 관련된 것을 제가 할 수 있는 정도 안에서만 진행했거든요. 여성영화제에서 다양한 예술 관련 종사자 동료들과 서로 응원하며 일했던 게 꽤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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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될 때》(2019), 전시전경.

이전에도 몇 번 풀타임 일을 하긴 했지만, 프로젝트 성격으로 진행한 것이라 3-4개월 내에 끝이 보이는 일들을 했었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약 1년간의 풀타임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요. 처음이라 그런지 제 스스로도 어떤 부분이 프리랜서와 다른지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가장 새로웠던 것 중 하나는, 업무와 완전히 분리된 쉼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몇 달 전부터 베이킹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 신기하더라고요.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취미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프리랜서로 있을 땐 일과 삶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또 쉴 때 뭐라도 해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이제 막 풀타임 업무를 시작한 저에겐 마치 합리적 쉼 같은 휴식시간이 있다는 게 새로운 부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