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론> 원문 & 번역문

<aside> 🐾 아래 원문과 번역문을 붙입니다. 원문은 ctex.org에서 옮겨왔습니다. (링크) <장자>는 통행본마다 글자에 조금 차이가 있고, 장절의 구분이 다릅니다.

</aside>

<aside> 🐾 아래 번역은 모두 기픈옹달 이 직접 옮겼습니다. 딱딱한 직역보다는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는 문장으로 옮겼습니다. ‘우화’라는 형식에 따라 마치 이야기하듯 옮겼습니다.

</aside>

원문 (펼치기)

[번역문] 제물론 : 너도 나도 하나의 피리에 불과하다

<aside> 💬 앎(知)이란 무엇일까. <제물론>은 앎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근대 철학에서 앎이란 단순히 지식의 문제를 넘어,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을 기억합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라는 주체는 생각, 즉 앎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장자의 접근은 이와 다릅니다. 그는 앎의 모호함을 이야기해요. '나'라는 개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앎도 없고, 고정된 나도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장자는 우리를 커다란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물론>의 첫 시작, "나는 내 자신을 잃었다(吾喪我)"는 남곽자기의 말은 이 곤혹스러움을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예전부터 <제물론>은 '만물제동萬物齊同', 모든 사물이 같다는 주장을 담은 글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보다는 앎에 대한 질문, 윤리적 가치에 대한 근본적 회의, 존재에 대한 부정 등이 더 중요한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나아가 '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장자는 '도'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도'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도,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길(道)은 사람이 다녀서 만들어진다(道行之而成)"는 말처럼, '도'는 떠남(行)과 함께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떠남이란 곧 질문이 아닐지요.

</aside>

남곽자기가 책상에 기대어 앉아 있었어.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것이 마치 넋을 잃은 것처럼 보였어. 옆에서 서 있던 안성자유가 말했지. "어찌 된 일인가요? 모습은 마치 마른 나무와 같고 마음은 마치 죽은 재와 같습니다. 지금 책상에 기대어 있는 사람은 어제 책상에 기대어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남곽자기가 말했지. "좋은 질문이구나. 지금 나는 내 자신을 잃었는데 너는 그것을 알겠느냐? 너는 사람의 피리 소리는 들었어도 땅의 피리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지. 땅의 피리 소리를 들었다 하더라도 하늘의 피리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을 게다."

"무슨 뜻인지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대지가 숨을 내쉬는 것을 바람이라 부르지. 고요하게 바람이 일지 않을 때도 있지만, 바람이 일면 모든 구멍이 울부짖는다. 휘익휘익 하는 소리를 들어보았을 테다. 깊은 숲 속, 백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나무에 여러 구멍이 있어. 어떤 것을 코 같고, 어떤 것은 입 같고, 귀 같고, 눈 같지. 술잔 같은 것, 절구통 같은 것도 있어. 웅덩이 같은 것도 있고 구덩이 같은 것도 있어. 아아 우우 호통치는 것 같기도 하고, 쉬익 휘익 성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이 여이 누구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낄낄 깔깔 웃는 것 같기도 해. 앞에서 위잉 소리가 나면, 이어서 휘잉 하는 소리가 뒤따르지. 산들바람은 작게, 하늘바람은 크게 세상을 울리지. 그러나 아무리 사나운 바람이라도 멈추면 구멍들은 텅 빈 상태로 돌아갈 뿐이야. 그렇게 흔들흔들 살랑살랑 소리가 잦아지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땅의 피리 소리라는 것은 여러 구멍에서 나는 소리이고, 사람의 피리 소리란 퉁소에서 나는 소리이군요. 하늘의 피리 소리란 어떤 것입니까?"

"갖가지 다른 것에 숨을 불어넣은 것인데도 제 스스로 그런 줄 알아. 저마다 각기 제 생각을 가지고 있다지만, 누가 불어넣은 것일까?"


큰 앎은 넉넉하지만 작은 앎은 쩨쩨하지. 큰 말은 담담하나 작은 말은 재잘거려. 잠을 자도 꿈이 어지럽고 깨어나면 마주치는 온갖 것에 얽매여 날마다 마음이 다투지. 그런데도 태연한 척, 괜찮은 척, 아무것도 아닌 척. 작은 두려움에 쩔쩔매다가도 큰 두려움이 닥치면 넋을 잃어. 시비를 따지는 모습은 마치 화살을 쏘아대듯 날카롭고,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은 묵묵히 맹세를 지키듯 끈질기지. 그러다가도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듯 날마다 조금씩 쇠락하기 마련이야. 그렇게 흘러가 버리면 다시 되돌릴 수가 없어. 늙어 고집을 피우면 마치 꽉 눌러 구멍을 닫아놓은 듯해.  마음이 죽음에 가까워지면 다시 일으킬 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