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로의 본명은 무엇인가? 나는 처음에 이여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부터 이여로는 이여로가 아니라 이땡땡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강보원에게 이여로가 본명이 아닐 것 같다는 말을 분명 했었다. 그런데 강보원은 한참 지나서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내 의문이나 내 짐작이 사라지나? 그런데 그런 것 같았다. 강보원은 기억에 없다고 우겼고 왜 우기냐고 하자 우기는 게 아니라 그냥 사실이라고 했고 자기는 우기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마치 사라진 사람 같았다, 왜냐하면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고 저 사람이 주장하니까. 하지만 이 함정은, 내가 앤솔로지를 만들기로 합의하고도 한참이 지나서 발견한 것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여로와 천사

이여로를 처음 보았을 때 이여로는 천사 같았는데 흰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테라스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마침 날이 좋아서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고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펄럭였다. 그는 테라스에서 나와 강보원을 내려다보면서 집 정리를 위한 오 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아주 공손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는데 그걸 어떻게 설명할까?

그가 가족과 함께 산다는 집엔 미니 테라스가 딸려 있었다. 테라스 너머로 후암동 일대의 전경이 보였다. 왜 그는 앤솔로지를 위한 첫 미팅 날에, 하필이면 테라스에서 모습을 드러냈을까? 왜 흰 큰 잠옷 같은 셔츠를 입고 맨발로 서서 양해를 구할 수 있는 테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을까? 이여로의 집 옆 옆 집에서 개가 짖었고 골목은 나름대로 깨끗하고 조용하고 어지러웠다. 나와 강보원이 건물의 필로티 주차장에서 그를 기다리는 동안 대천사 이여로가 집을 치우며 쿵쿵 쿵딱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려서 정말!

나일선, 강보원, 이여로, 나는 길쭉한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뭔가를 말했고 빵도 나누어 먹었다. 이여로가 빵 뭉치를 부스럭거리더니 맛있는 빵이라고 접시에 내려두었지만 난 안 먹었다. 물 좀 달라고 했더니 아리수를 주고! 아리수를 마시다가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난 빵 한 조각을 먹고야 만다……

처음 나타났을 때 천사인 줄 알았네요, 라고 나는 이여로에게 웃음기 섞인 말을 하고야 말았는데 그 말을 한 이유는 그 말을 하지 않으면 뭔가가 영원히 설명되지 않으리라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을 해도 말은 농담이고(대개 그렇듯이) 농담이든 아니든 말은 결코 우리를 돕지 않는다. 우리는 뭘 했지? 우리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남산에 올라 턱걸이를 했다. 나일선이랑 이여로가 잘하고 강보원은 그럭저럭하였고 나는 꼭 잘하고 싶었다.

나일선과 와플

나일선이 와플을 가져왔는데 그가 그 와플을 직접 구운 것 같았다. 와플 옆에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칼이 필요해서 나일선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혹은 그렇게 말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더니 가져다준다. 그곳은 나일선의 나와바리였고 그래서 그렇게 맛있는 와플이 있었던 것이다. 몇 번이나 나일선이 있는 나일선의 일터에 왔었는데 이제야 이런 맛있는 와플을 주다니! 강보원은 무언가를 주장하느라 너무 바빠서 와플이 다 식고서야 먹었다. 하지만 나는 제때 필요한 도구를 갖추고 그것을 조각내어 먹었다. 이여로는 아마도 적당히 먹었고 나일선은 종종 먹었고 강보원은 말을 하느라 바빠서 마지막 한 조각을 먹었다. 내가 대천사 이여로가 주었던 빵을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한 조각 먹었던 것처럼. 이는 무슨 기묘한 조화일까? 넷이 모이면 꼭 누군가는 식은 빵 한 조각을 먹는 게! 난 나의 행동일부를 문장으로 남겨 그 문장을 강보원이 받아서 쓰기라도 한 것처럼 놀랐다. 물론 강보원은 아무 생각도 없었고 나중엔 나일선의 일터에 있는 멋진 형광 오렌지색 소파1)에 앉아 푹 쉬었다. 나와 이여로가 강보원을 피곤한 귀여운 동물 다루듯이 다루었던 것 같다……

나일선은 자꾸 부재했고 자꾸 카운터 뒤에서 뭔가를 썼고 우리 몰래 뭔가를 뭔가를 자꾸 하거나 자꾸 태만했네요. 하지만 나일선은 맛있는 아이스크림 와플을 갖다주었고 거기서 난 이전 모임과의 연결성을 느꼈다. 이걸 농담이라고 말하면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농담을 농담으로 건져내는 걸 돕지 않을 것이었고 나는 둘은 말하고 하나는 사라진 테이블 앞에 두고 앉아서 오후의 강남대로를 등지고 있었다.

우유 이야기

김유림은 진 할인마트에서 제일 싼 1,400원짜리 우유만 마시다가 어느 날엔 우유갑을 착각해서 매일우유를 사고야 마는데……. 아마 그날 무척 피곤했을 거야. 나는 이 에피소드를 강보원에게 들려주고 강보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이후에 이 에피소드를 멋지거나 대단하다고 언급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다시 여기 써보자면 나는 갑자기 나도 모르게 600원인가 800원이 비싼 우유를 사고 말았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 그 우유로 라떼를 만들어 먹는다.

이 에피소드를 엄마 아빠에게도 말해주었고 그건 가족 여행을 가는 차 안에서였다. 이미 낡아버린 에피소드를 반복해서 김유림은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몰라 아마도 김유림은 자신이 불안정한 프리랜서의 삶을 살지만 일상만은 굳건히 지켜내고 있다는 그런 인상을 부모에게 이야기라는 환상적인 매개물을 통해 전함으로써 뭔가를 뭔가를 얻고자 했을 것이다. 엄마 아빠는 나름 재밌어했고 특히 운전을 하느라 바쁘던 아빠가 갑작스레 김유림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신이 나서 김유림은 이미 끝난 에피소드를 조금이라도 길게 늘여보려고 했는데 그즈음이 되자 엄마도 아빠도 별 관심이 없었다. 이걸 강보원에게 들려주니까 그는 뭔가를 이해했다고 했다.

(800원 비싼 우유로 만든) 라떼가 너무 고소하고 맛있어서 너무 부드러운 충격2)이었다. 난 왜 이렇게 충격을 자주 받을까? 충격을 받고 나서야 다른 우유를 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이후로는 한 번도 우유 실수를 한 적이 없다는 게 이 이야기의 끝이다.

폭주족 강보원

강보원은 폭주족인가? 나는 강보원이 안전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반드시 좌우를 살피고 택시를 타면 손잡이를 꼭 잡는다. 내가 알기로는 위험이 내재한 모든 일을 극도로 꺼린다고…… 그런데 듣자 하니 강보원이 이여로와 사전 비밀 회동을 한 후에 이여로의 오토바이에 탔다는 것이다! 이건 둘의 이야기고 둘의 기억이니까 끼어들 여지가 없는데도 난 충격을 받았다. (어김없이 또).

이여로는 처음 등장할 때 천사처럼 나풀거렸고 그런 이가 모는 오토바이에 강보원이 탔다고? 헬멧을 썼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강보원은 천사분이랑 어디로 갈지 모르는 도로를 질주한 것이다. 그걸 알기나 할까? 말로 들은 나는 안다. 말로는 모든 길을 갈 수 있고 그 길 중의 하나가 바로 천국행 길이기 때문이다. 지옥행이거나…… 이여로는 어느 날 내가 신고 온 빈티지 부츠를 보고 부츠가 따뜻하냐고 물었는데 맞나? 어쨌든 그가 부츠의 방한력에 대해 궁금해했던 이유는 오토바이를 탈 때 추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