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에 말수도 적고, 어른 말이라면 고분고분 잘 듣는 참하디참한 아이였다. 그런 나에게 치명적인 비밀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코딱지를 먹는 것. 쬐끄만 콧구멍을 꽉 막고 있는 이 불청객을 시원하게 처리한 후 입속으로 쏙 넣으면 짭조름하게 씹히는 것이 제맛이었다. 아마 내 몸을 충분히 탐색할 능력이 생긴 5살 무렵부터 저학년 어느 때쯤까지는 코딱지 맛 좀 봤으려나.

시간이 흐르고 다섯 살 터울의 둘째 동생이 커서 어쩜 나와 똑같이 코딱지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나의 치부를 들킨 것처럼 그렇게 놀랍고 부끄러울 수 없었다. ‘아니, 세상에! 얘는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코딱지 먹었던 것을 어떻게 알고 따라 하는 거지?’

부모님께서 늘 말씀하셨다. “첫째가 잘해야 동생들도 잘한다. 그러니 언제나 본이 되어야 한다.” 완벽하게 어른들 말씀을 따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유일하게 몰래 했던 행동이 동생으로 인해 들킨 것 같아 괜스레 화를 냈다. “야!! 너!! 드릅게 코딱지 먹지 마!!!”

30년 뒤, 나의 아이도 코를 열심히 후비고 나면 코딱지를 먹는다. 온갖 세균과 먼짓덩어리라고 타일러도 아이는 코딱지를 돌돌 말아 냠냠 먹는다. 그래, 너는 내 자식이 맞구나! 내 자식이 맞다 싶은 순간이 어디 한둘인가.

아이의 외형은 남편 판박이라 날 닮은 구석이 어디 있나 싶다가도 자기가 아끼는 물건에 생긴 자그마한 티끌에 난리법석을 떠는 것을 보면 그래, 내 자식이구나 싶은 것이다. 집에서는 밝고 적극적이지만, 또래 친구들 사이에는 쉽사리 끼지 못하고 빙빙 주위만 도는 모습은 영락없이 어릴 적 내 모습이다.

요즘은 어린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를 둘러싼 외적, 내적 문제를 맞닥뜨리면 36살의 나를 멈추고, 8살 어린이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내 속에 멈춰 있던 작은 세상의 문을 열어주는 어린이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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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만나러 갈 땐, 축구공을.

이제는 내 아이가 8살이다. 그 어떤 워킹맘도 일을 멈추고  온 신경을 쏟는다는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가 되었다. 12시 하교를 알리는 알람이 지잉- 울리면 모든 업무 올스톱. 가방에 축구공을 넣어 메고, 운동화를 욱여 신고서 후다닥 뛰듯이 아이를 만나러 간다.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엄마를 만나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이 일단 학교 앞 놀이터로 우당탕탕 뛰어간다. 같은 반 친구들과 놀기 위해 저리도 신나게 뛰어가나 싶지만 아이는 그저 친구들 주위에서 한 발치 떨어져 배회할 뿐이다.

아이와 친구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이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 아이가 겪고 있을 마음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고 있다. 아이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언제나 나의 어린 시절을 소환한다. 아이가 8살이면, 나도 8살이다.

그 시절 나에게 학교는 이제껏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낯설고 커다란 세상이었다. 소란스러운 교실에서 말 한마디 없이 가만히 앉아 눈만 또르르 굴려 가며 같은 반 친구들을 관찰했다.

첫 짝꿍 새벽이는 동그랗고 하얀 얼굴에 머리띠를 한 모습이 참 고왔다. 무엇보다 먼저 손들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발표하는 모습이 멋졌다. 아이들 사이에서 대장처럼 행동하는 원철이는 수업 때면 한글을 몰라 쩔쩔맸다. 아빠가 태권도 관장님이라는 도진이는 작고 다부진 인상에 친구들 사이에서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다. 내 앞자리에는 아침마다 부모님께서 예쁘게 땋아주셨을 가지런한 지네 머리를 한 우진이가 앉아 있었고 나는 그 머리가 참 부러웠다.

나는 같은 반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기에 그리도 유심히 관찰했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 사귀는 방법을 몰랐다. 친구에게 첫마디를 어떻게 건네야 할지, 무슨 이야기로 이어 나가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모른 채로 조용히 앉아만 있다 1학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