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제가 WOOWHO의 강연대에 설 수 있었던 건 지난 2월에 진행한 “파일드-타임라인 어드벤처”의 ‘반반무마니를 시키는 법’ 때문인 것 같습니다. #000_내_성폭력의 타임라인을 지나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기획했던 자리로, 해외의 문화계 성주류화 사례를 소개하고 국회의원 이정미와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처음으로 설친고 떠들고 나댔더니 과분한 기회를 얻게 되어 기뻤지만, 동시에 내가 이 강연대에 서서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머리가 터지게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당시 제가 어떤 특이 케이스로 여겨지는 것(아니 어떻게 그런 일을~? 느낌의…)이 저에겐 되려 신기하여 개인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걸 가능케 했던, 저를 지탱해주는 경험들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싶었습니다. 그러나 기대를 품고 와주신 분들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저는 저를 너무 믿어버렸고, 그래서 그날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고 싶던 말을 정리해 글로 풀어보았습니다. 이 글은 좀 더 정리되었을 테니 함께 그날의 기억을 지워주세요…

하고 싶었던 말 1. 최대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시길 바랍니다.

제 삶에서 일어났던 가장 큰 일 중 하나는 호주 시드니로의 조기유학입니다. 평생 지방에 살며 서울 상경만을 꿈꾸던 저에게 1세계로의 입성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게 11년이 될 줄은 몰랐지만요. 또 예상치 못했던 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 단위로 리셋되었던 주변 환경입니다. 매번 낯선 상황에 던져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건 꽤나 피곤한 일이었습니다만 그만큼 다양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건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다양’이란 제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배경의 사람들을 뜻합니다. 뉴욕 물가가 너무 싸서(…) 과소비를 해버려 그 짐을 컨테이너로 보내야 해 반성을 한다던 친구부터 이라크 출신으로 도보로 국경을 넘어 동남아시아에서 배를 타고 호주에 와서 난민신청을 했으나 아버지의 둘째인가 셋째 부인이 호주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 거짓말을 이유로 디텐션센터에서 1년을 보내야 했던 친구까지, 상상도 못했던 다양한 세계를 만나며 제가 이해하는 세상도 많이 넓어졌습니다. 역으로 ‘내가 당연히 여기는 것도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있겠구나’를 배울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이는 디자이너로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디자이너가 이 업계에서 배제당하는 가장 큰 이유가 남성의 ‘형님(a.k.a. 알탕)’ 문화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친구가 “유명한 여성 디자이너는 모두 누구 부인이거나 여자친구인 것 같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를 차치하더라도 무엇이 ‘알탕’인지 보여주는 한마디라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사람의 부인이거나 여자친구가 아닌 여성이 ‘형님월드’의 테두리 안에 진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런 문화는 여성만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디자인으로 유명한 몇몇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사람부터 장애인, LGBTQI, 이주민, 혹은 다문화가정의 자녀까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가부장적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는 소수를 뺀 모두가 해당합니다.

‘형님’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아는 사람’ 위주로 일이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그런 폐쇄적인 세계가 형성되면 권력이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됨은 물론 그 테두리 밖 사정에 대해서는 눈이 어두워집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눈에 유일무이한 그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며 변화를 거부하게 됩니다. 이 함정은 누구나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니 의식적으로 늘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해외에서 생활하며 그런 상황이 의식하지 못한 채 주어졌지만, 의식하고 행동한다면 한국에서도 놀랍도록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일할 때도 되도록 모르는 사람들과 해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해 보거나, 낯선 동네를 가보거나,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일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여행도 좋은 방법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잇츠나이스댓’(It’s Nice That)에 제마 저메인스가 제안한 디자인 업계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법을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인맥으로 사람을 구하지 말 것 사람을 구할 때 장애인이나 유색인종 지원자, 성 소수자를 우선 검토할 것 무급 인턴을 쓰지 말 것 펍에서 사교하는 것을 멈출 것 야근을 줄일 것 자신의 특권을 깨달을 것”[1]

하고 싶었던 말 2. 큰 맥락에서 보면 우리는 진보하고 있습니다.

교환학생으로 밀라노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디자인 학과 공통 필수과목에 수학이 있는 걸 보고 놀라서 왜 수학을 배우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수업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공부하며 수학적 원리를 이용해 작도하는 법을 배운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식당에 아직도 남아있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고 크게 압도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500년 전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을 다빈치와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학교에서 다빈치를 배우는 학생들 사이를 잇고 있는 강한 힘이, 그 연결됨이 큰 안정감으로 작용하는 듯하여 무척 부러웠습니다. 저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기로 했고 한국에서 줄곧 저 나름대로 그 연결됨을 찾는 작업을 해 왔습니다.

아는 것이 피곤함이라고… 근래 페미니스트로 거듭나신 많은 분이 매일매일 누적되는 피로감에 지칠 수도 있겠다 싶어 이 이야기를 꺼내보았습니다. 연결됨을 키워드로 타임라인을 줌아웃해보면 우리 사회는 확실히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목격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가끔 10년쯤 전에 생리 기간 중 수영장 월 이용료 환불을 요구한다는 기사를 읽고 ‘템폰끼고 수영하면 되지 않나’라고 댓글 달았다가 창녀니, 여적여니, 너나 템폰끼고 죽으라는 둥 다양한 악플을 읽었던 개인적 경험을 그리고 최근의 생리컵 붐을 생각해봅니다. 폐허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때도 떠올려봅니다. 우리는 정말 폐허 위에 서 있는 것이었을까요? 폐허라는 말이 너무 쉽게 그 이전의 이야기를 지워버리는 건 아니었을까요? 아니, ‘폐허’라는 말이 내포하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과연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나 할까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갑갑함, 거기서 오는 좌절감, 패배감을 알지만 긴 맥락에서, 어떤 이야기를 이어갈지 생각해보면 갑갑할지언정 깜깜하진 않습니다.

혹시 그 연결됨에 관심이 더 생기신다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그 연결됨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서 내가 이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찾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하다 보면 장기적인 안목을 키우고 쉽게 흔들리거나 지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쉽게 지치지 않는, 마라톤에 적합한 인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선수들이 마라톤을 위해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몸을 관리하고 훈련하듯 여러분 개개인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잘 돌보고 아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