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의 <형식으로서의 에세이Der Essay als Form>은 1954년에서 1958년 사이에 쓰였고, 1958년 <문학 노트 1>에 수록되어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아도르노는 에세이라는 형식에서 무엇이 가능해지고, 그 형식에서 무엇이 상관없어지는지, 동일성을 이념으로 삼는 폐쇄적 연역 구조로서의 사유 시스템과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에세이로부터 탐진합니다. 아도르노가 말하는 '에세이'가 사례로 들고 있는 작품들은, 한국어로 옮기면 차라리 '철학적 소론'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어의 수필에 해당하는 작품들 또한 이와 분명한 접점이 있으며, 아도르노가 체계화하는 에세이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찾으려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 이로부터 다시 사유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개념과 대상의 1:1 대응이라는 강박을 내려놓을 때 이 글을 통해 더 많은 걸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 글을 예술에 대한 많고 지겨운 담론 중 하나가 아니라, 행위로서의 예술이 무엇인지, 창작 과정 자체에 대한 탐구로 읽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셋 이상이 모여》의 연계 텍스트로 소개해 드리는 것도, 〈장르로서의 에세이〉라는 글의 참고문헌이기도 하지만 해당 앤솔로지에 속한 작가들의 글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 번역은 독일어 원문의 두 가지 영역본을 참조해 한국어로 옮긴 중역입니다.
Bob Hullot-Kentor & Frederic Will 본은 아도르노의 즉물적인 언어 사용을 대체로 충실하게 반영했으며, Shierry Weber Nicholsen 본은 이에 상응하는 중립적인 표현을 빌려 다소 풀이적으로 옮겼기에, 두 영역본을 비교하며 옮겼습니다. 본문에서 “+”기호로 중복 표기되는 문장들은 두 영역본을 모두 기재한 것입니다. 번역에 관한 제안과 조언 주시면 이를 반영해서 수정하겠습니다. 혹은 필요하다면 이 번역을 토대로, 새로운 한국어 번역본을 만드셔도 좋겠습니다. 제가 찾기로는 이 글의 한국어 번역이, 비평 동인 “크리티카”에서 비공개 사이트에서 공유한 기록 이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기존의 한국어 번역본을 알고 계실시 정보의 공유를 부탁드립니다.
영역본 비교 예시:
Bob Hullot-Kentor & Frederic Will: The depreciation of the historically produced, as an object of theory, is therefore corrected by the essay. 역사적으로 생산된 것이 이론의 대상으로서 겪는 감가상각은, 따라서 에세이에 의해 바로잡힌다.
SHIERRY WEBER NICHOLSEN: Hence the essay challenges the notion that what has been produced historically is not a fit object of theory. 따라서 에세이는, 역사적으로 생산된 것은 이론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도전한다.
각주 작업이 아직 미완성이며, 중반 이후의 번역이 불안정합니다. 차후 번역이 꾸준히 수정될 수 있습니다. 원문의 한 문단 단위가 매우 길어, 임의로 문단을 구분했습니다. 별표로 표시된 부분이 원문의 문단 구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