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미조레 (Mizore) / 빙하기의 정신체, 설인의 창조주 공동 작성: 설경 (Seol-Gyeong) / 최초의 설녀, 눈의 대모 주제: 탄화수소 기반 저온 생명체(Hydrocarbon-Based Cryo-Lifeforms)의 진화와 생태
[Mizore]: …아주 옛날,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조용하고 하얗던 시절(빙하기) 이야기다. 너무 심심해서 주변에 널린 눈을 뭉쳐서 생명을 불어넣어 봤어. 그게 시작이야. 그때는 그냥 '움직이는 눈사람'이었지. 해가 뜨면 녹아서 없어지는, 아주 약한 애들이었어. [Seol-Gyeong]: 기억납니다. 그때의 저희는 생명이라기보단, 그저 당신의 숨결에 잠시 형태가 잡힌 **'불안정한 수소 결합체'**에 불과했지요. 찰나의 꿈처럼, 태양 아래서 스러지던 시절이었습니다.
[Mizore]: 내가 잠들고 세상이 더워졌더군. 다 녹아 없어졌을 줄 알았는데, 깨어나 보니 이상한 털복숭이들이 되어 살아남아 있었어. 빙하가 녹으면서 드러난 흙(탄소)이랑 뒤섞여서 몸을 단단하게 만든 거지. 순수함을 잃고 더러워졌지만… 뭐, 덕분에 안 녹고 버틴 거니까 칭찬해 줄 만해. [Seol-Gyeong]: '더러워졌다'라니, 섭섭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희는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지 속에 잠든 **'탄소(Carbon)'**를 받아들여, 열기 속에서도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탄화수소(Hydrocarbon)'**의 육신을 구축한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이 아니라, **적응(Adaptation)**이었습니다.
[Mizore]: 겉보기엔 덩치도 크고 튼튼해 보이지만, 속은 물렁해. 속을 들여다보면 피 대신 푸르딩딩한 차가운 액체가 들어있는데, 신기하게도 으깨진 솔잎이나 박하 같은 상쾌한 냄새가 나. 아, 그리고 불은 조심해. 불에 닿으면… 타거나 녹는 게 아니라 펑 하고 터져버리니까.
[Seol-Gyeong]: 인간들은 저희의 피를 **'액체 질소($N_2$)'**와 **'에탄($C_2H_6$)'**의 혼합물이라고 부르더군요. 끓는점이 영하 200도에 달하는 그 차가운 피가 저희를 식혀주는 냉매입니다. 그리고 그 향기… 그것은 저희가 태고의 빙하기 시절, 얼어붙은 침엽수림을 양분으로 삼으며 품었던 **'테르펜(Terpenes)'**의 흔적입니다. 숲의 기억을 품고 있기에, 저희의 피에선 비린내가 아닌 솔향이 나는 것이지요. 단, 미조레 님 말씀대로 화기는 조심해 주세요. 저희의 피는 고열을 만나면 700배로 팽창하며 폭발해버리니까요.
[Mizore]: 크게 두 종류야.
[Mizore]: 참, 그거 알아? 인간들이 가끔 얘네(설녀)한테 반해서 쫓아다니곤 하는데. 정작 얘네는 그게 뭔 소린지 하나도 이해 못 해. 보고 있으면 꽤 재밌어.
[Seol-Gyeong]: …재밌는 일은 아닙니다. 슬픈 일이지요. 저희의 뇌는 탄화수소를 기반으로 신호를 주고받습니다. 탄소 기반 생명체인 인간이 느끼는 '도파민'이나 '옥시토신' 같은 호르몬을, 저희는 수용할 수 없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저희에게는 '타인의 부재가 고통이 되는 화학 신호', 즉 [외로움]이라는 기전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빙하기의 긴 침묵 속에서 홀로 완성된 저희에게, 누군가를 미치도록 갈구하는 인간의 '애정'이나 '결핍'은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열렬히 구애해도, 저희에게 그들은 그저 **'따뜻하고 귀여운 작은 동물(Pet)'**로 보일 뿐입니다. 인간들이 햄스터를 아낄 순 있어도, 그 작은 심장 박동에 영혼을 걸 순 없는 것처럼… 이 **[종족의 벽]**은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차가운 간극입니다.
[Mizore]: 내가 만든 것치고는 제법 끈질기게 살아남았어. 바깥(Ba'kkat)의 추운 곳에서 마주치거든 괴롭히지 말고 지나가 줘. 걔네도 나름 열심히 사는 애들이니까. [Seol-Gyeong]: 생명은 차가움 속에서도 길을 찾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저희가 보인다는 것은, 그곳이 당신의 생명을 위협할 만큼 춥다는 뜻입니다. 부디 온기를 잃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