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명이 올해 일하러 갔다 돌아가셨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공사 현장에 가보면 하청의 하청, 하청의 하청의 하청이 반복된다.’ ‘후진적 산재를 영구적으로 추방해야 한다.’

지난 7월 29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 말들이다. 국무회의를 하는 줄 모른 채로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속보로 뜨는 대통령의 발언이 온통 산재에 대한 것이어서 어리둥절했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전해지는, 구체적이고 현실의 감각이 살아있는 정치인의 말이 낯설었다.

처음으로 생중계된 국무회의가 노동자 산재사망을 주제로 다뤘다니 반갑고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한국은 압축적인 경제개발 과정에서 노동자의 사망을 산업화의 부산물 정도로 치부해 왔다. 민주화 이후에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산재 사망은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지 못했다. 국민의 다수가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인데도 산재 사망이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했던 이유는 노동 문제를 경제정책의 하위 범주로 여겼던 정치와 정치인들의 문제이지 국민들이 무관심해서가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국무회의 이틀 후, 포스코를 방문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회의 전 사망노동자들을 위해 묵념하는 영상이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한 것도 이제는 바꾸고 싶어하는 마음이 모여서일 것이다. 대통령의 국무회의 영상에도, 장관의 묵념 영상에도 ‘제가 일하는 곳은 더 열악해요’, ‘우리 현장에도 와 주세요’라는 댓글이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댓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짠했다. 대통령과 장관이 수백 명으로 늘어나는 분신술을 써서 모든 현장에 갈 수도 없지 않나!

2025년 7월 25일 국회 앞,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이 민주노총이 꾸린 노조법 2·3조 농성장을 방문했다. 노조법2·3조는 2026년 3월 10일부터 시행된다. 출처 노동과세계.

2025년 7월 25일 국회 앞,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이 민주노총이 꾸린 노조법 2·3조 농성장을 방문했다. 노조법2·3조는 2026년 3월 10일부터 시행된다. 출처 노동과세계.

보여 주기 식으로만 하는 걸 가리키는 요즘 유행어 ‘쇼잉(showing)’을 빌려와서 말하자면 산재만큼 ‘쇼잉(showing)’이 쉬운 영역이 없는 것 같다. 아니 내가 본 많은 정부 관료와 정치인, 기업CEO들은 ‘쇼잉(showing)’의 달인들이다. 일단 우리는 사고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노동자 책임론에 익숙하다. 산재 사고를 다루는 언론 보도에는 ‘작업자 부주의’라는 구절이 빠지지 않았었다. 쉽게 말하면 사고는 노동자 탓이다. 건설현장 인근 식당이라면서 초록색 소주병 사진을 찍어서는, 작업시간에 술을 마시는 노동자들 때문에 사고가 난다는 기사를 실은 신문기사도 여전히 있다. 안전교육을 노동자 의식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정부, 기업, 보수언론의 삼박자가 맞아 안전문화 컨설팅을 한다면서 정부예산도 책정해 왔다. 산재 사망으로 비난받는 기업들이 안전경영, 윤리경영 선포식을 펑펑 하고 대국민 약속, 대국민 사과 같은 이벤트를 하는 것도 산재를 노동자 의식의 문제라고 간주하면서, 자신들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한국의 빵 공급을 독점하다시피하는 SPC공장에서 노동자가 잇따라 사망해서 불매운동이 불거지자 2022년 SPC가 안전에 1,000억원을 투자하고 안전경영위원회를 만들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적이 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안전경영위원회가 현장실사, 온오프 간담회, 위험성 진단 등을 정기적으로 수행하고, 안전 우수사례 시상 같은 행사를 주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5월 19일에 경기도 시흥 SPC공장에서 크림빵 냉각 컨베이어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던 노동자가 사망했다. 노동자가 기계에 끼인 후 구조가 바로 이뤄지지 않았고, 2인1조 근무도 되지 않았다. 사람을 감지하면 바로 멈추는 안전센서도 없었다. 이런 단순하고 기초적인 조치가 안 되었지만 사고 몇 달 전 안전경영위원회는 시흥공장에 안전 우수상을 주었다고 한다. SPC는 기업 이미지가 나빠지자 큰돈을 투자해 한 번에 해결할 것처럼 홍보했지만 1,000억원을 어디에 투자했는지, 저토록 왕성하게 활동한 안전경영위원회가 실제로 노동자들에게 관심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SPC의 중대재해처벌법 대비와 정부의 관리감독,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산재 사고 후 경찰수사 등에는 유리하게 작용하겠지만.

이재명(오른쪽) 대통령이 25일 경기 시흥시 SPC 삼립 시흥 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허영인(왼쪽) SPC그룹 회장과 논의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재명(오른쪽) 대통령이 25일 경기 시흥시 SPC 삼립 시흥 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허영인(왼쪽) SPC그룹 회장과 논의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그나마 기업 내부 상황이 조금 알려진 SPC의 사례를 들었기는 했지만, 대통령의 국무회의 이후 안전보건경영책임자(CSO)를 신규 채용하고 안전보건팀 직원을 충원하고 안전경영보고서도 준비해야 하고, 기업들마다 어수선하고 호들갑스러운 분위기일 것이다. 정부 관료들도 지금은 바짝 긴장하고 있지만 언론이 다른 이슈로 몰려가고 관성의 힘이 커지면, 어느 순간에 늘 하던 대로 할지 알 수 없다. 지난해인가, 특정 업종 노동조합들이 모여 사업장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나고,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절절하게 말하는 자리가 있었다. 조합원들의 말을 듣는데 안타깝고 울분이 차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사회를 맡은 나는 토론자로 참석한 고용노동부 관리의 말을 꼭 듣고 싶어서 시간이 늦어지는데도 마이크를 건넸다.

“여러분의 말대로 진짜 위험한 지는 위험성 평가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