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전에 할아버지가 코로나바이러스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할아버지는 미국에서 한인 이민자였고 한국전 참전용사였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피와 희생으로 지킨 조국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건 가족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리고 지금 되돌아봤을 때 비참한 건, 할아버지랑 정말 깊게 친해지지는 못했다는 겁니다. 저는 자라면서 기초적인 것 이상의 한국어를 배우지 못했고, 할아버지는 영어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전할 말이 있을 땐 언제나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이 통역해줬습니다. 저는 언젠가는 진심으로 한국어를 공부해보겠다고 늘 다짐했지만, 매번 겉핥기로 끝날 뿐 깊이 파고든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께 통역을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통역을 통해 전해 듣는 건 한계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말이 별로 없는 분이었습니다. 자주 못 뵌 것도 아니고 매년 가족 모임 등으로 뵀지만, 주로 할아버지는 소파에 깊숙히 앉아계실 때가 많았습니다. 그저 손주들이 발치에서 놀고 부모님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때, 마치 풍경의 일부인 것처럼 조용히 같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랑 할아버지는 대화를 자주 할 수는 없었지만,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할아버지가 저를 "천재"라고 불렀던 게 기억납니다. 할아버지가 제 나이 때 대학 같은 건 사치였지요. 할아버지는 대신 그 시절을 조경사로 일하며 푼돈이라도 모으는데 보냈습니다. 먼 미래에 우리가 그럴 필요 없도록, 할아버지는 자주 손을 베여가면서 열심히 일하신 겁니다.

할아버지는 혼자 임종을 맞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임종 직전까지는 방문을 허락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할아버지께 호스피스를 배정한 상태였고, 방문객 관리 책임자도 할아버지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지만, 그런데도 임박하지 않았다고 봤나 봅니다. 전혀 방문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 한 번도. 할아버지는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영어도 거의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할아버지와 우리 사이를 막을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도, 우리가 강제로 헤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세상이 급하게 위기에 빠지고 있던 상황도 할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도대체 당신이 어떤 종류의 질병에 당한 건지, 그 질병이 야기한 혼란이 어떻게 국경도 없이 퍼지고 있는지, 단 한 번의 병문안으로도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셨을 겁니다. 할아버지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언제나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고 이해시켜드리던 우리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분노. 슬픔. 누군가, 무언가에 대한 쓰라림과 혐오감. 그렇게 헌신적인 삶을 살던 분이 돌아가실 때 옆에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도대체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 자신에게 물을 뿐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침상, 밝은 조명과 불빛이 깜박이는 기계들이 있었을 뿐이지요. 그렇게 우리를 위해 희생하며 살았는데. 그렇게 돌아가시게 두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버림받았다고 느끼셨을까요. 외로웠을까요. 50년을 함께 한 할머니의 손을 잡지 못한다는 고통이 인공호흡기 사용의 고통보다 컸을까요. 사실 그 반대가 더 두렵습니다. 버려졌다고, 아무도 이제 자신을 찾지 않는다고 느낀 뒤 자포자기 하신 건 아닐까. 자신의 상태가 그렇게 악화 됐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이제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거구나라고 받아들이신 게 아닐까.

왜 하필 이런 식으로 작별을 하게 된 건지 알려달라고 누군가에게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습니다. 소리를 너무 크게 질러서 그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나를 사로잡고 있는 이 감정들의 극히 일부라도 느끼게 만들고 싶습니다. 근데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네요. 그리고 누구에게 소리쳐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병원 관계자들을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전화로 그들과 대화하며, 이 상황이 얼마나 잘못 된 건지 설득하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을 때 전화를 뺏어서 목이 쉴 때까지 소리 질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고함치고 싶은 대상은 나 자신이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은 병원 관계자들에 대한 증오에서, 할아버지 곁을 지키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증오로 바뀐겁니다. 임종뿐 아니라 그 전부터 기회가 있었음에도 할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모든 순간이 죄책감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몇 주간은 격랑 같았습니다. 마음이 잠시 멀쩡하다가도, 구석에 조용히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이제 다신 그 자리에 안 계실 거라는 걸 자각하곤 합니다. 역경과 모험으로 가득 찬 이민자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 우리가 살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산이라도 옮길 자세로 싸웠던 그분의 세대가 또 한 명의 전우를 잃은 겁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안 보이는 구석에서 우십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우시는 걸 평생 처음 봅니다. 이 사태가 종식되기까지 앞으로도 수천 명이 이걸 경험할 거라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 그룹의 여러분들이 들어야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다음번 외출 하기 전에 잠시 생각해주세요. 그 외출이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만날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그게 그 위험을 감수할 만큼 중요한 일인지. 저를 위해서 그렇게 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제가 뭐라구요. 근데 우리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감히 그런 부탁을 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클럽에서 하룻밤 놀며 느낄 수 있는 재미보다는 더 중요한 분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파티하거나 해변에서 노는 것보다, 그리고 마스크를 쓸 때 느끼는 약간의 불편함보다는 우리 할아버지의 존재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경험에 바탕해서 여러분이 당일 계획의 위험성을 평가할 때, 잘못된 결정으로 고통을 겪을 사람들은 나나 우리 가족, 우리 할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님, 조부모님, 형제자매, 친구들과 친구들의 가족입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외출하며 만날 사람들의 상당수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근무 중인 사람들이라는 것도 기억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