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2

서찬휘(SEO ChanHwe)

<검정 고무신> 이우영 작가님께서 2023년 3월 11일 돌아가셨습니다.

고인은 1992년 대원의 만화잡지 《소년챔프》의 공모전에 당선하여 만화가로 데뷔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검정 고무신>은 고인의 대표작으로, 이우영 이우진 형제가 만화 제작을 맡고 이영일 작가가 이야기를 맡아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연재했던 만화입니다. 연재 당시 '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 적'인 1960년대 서울 변두리 이야기를 담아 오랜 사랑을 받았지만, 작품과 작가가 걸어온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작품의 인기를 등에 업고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사업 등이 이어졌지만 형제 작가 둘은 2007년부터 2010년에 걸쳐 업체에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과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비롯한 일체 작품 활동 및 사업에 대한 권리를 '양도'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양도는 저작물 이용 허락과는 달리 인격권에 해당하는 부분 이외의 영역 일체를 문자 그대로 넘기는 것을 뜻합니다. 이른바 '매절'입니다.

때문에 애니메이션이 시즌4까지 나오는 동안 만화가로서 받은 비용이 (주장에 따르면) 435만 원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지만, 업체 측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이미 수정을 통해 원작과는 다르고 계약 조건 또한 현재의 표준 계약서가 통용되지 않던 시기의 관행에 따른 것이므로 본인들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밝혀 왔습니다.

업체는 작가의 부모들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애니메이션판 <검정 고무신>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고 형제들도 다른 곳에다 만화를 그렸다면서 소송을 당했습니다. 이우영 작가가 소송전에 지쳐갔던 까닭은 이런 지리멸렬한 소송전에 더해 '그땐 그것이 관행이었고 법적 문제는 없다' '만화가가 그린 캐릭터와 우리가 만든 캐릭터는 다르다, 우리 작품에는 원 스토리 작가가 참여했고 만화가들은 참여하지 않았다'라는 식으로 나오는 업체 때문이겠는데, 심지어 업체는 소송을 걸어놓은 상태에서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지금 OTT에 걸려 있는 극장판이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 작품의 2차 저작물 작성 과정에서 원작 만화가로서의 권리를 일절 인정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배제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캐릭터터 만든 작가로도 인정하지 않는 처사인데, 문제는- 정말, 문제는 '계약은 계약'이라는 겁니다. 업체의 발언에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다시 말해, 도의적인 부분이 어떻든 권리 관계에서 문제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양도 계약이란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최근 트위터에서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권리 관련해서 한바탕 논란이 있었죠? 일부에서는 다들 양도하잖는 것이라고 갑 편을 들고 있습니다만, 양도 잘못하면 행사할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사라집니다.

양도를 하려면 그래서 통상적 이용 허락에 비해 값을 매우 세게 부르고 넘기는 건데, 지금은 표준 계약서라도 있지 예전엔 값도 많이 안 주고 그냥 사인을 하라고 하고 믿고 사인을 하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검정 고무신>의 만화가 형제분들이 겪은 일이 바로 이런 낭패라 할 수 있습니다. 권리가 넘어갔으니 말마따나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런 식의 계약이 이뤄지면 안 됩니다. 일방적인 권리 침해라는 판단에 따라 이런 계약 하지 말라는 판단을 받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