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앤솔로지 참가작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은 없지만 이 작품은 정말 제 취향이네요. 소재, 문체, 인물, 배경, 스토리… 어느 것 하나 제 취향이 아닌 게 없어서 혹시, 작가님이 제 마음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 이런 말을 하면 부담스러워하실까요?

소혜와 윤금(익헌)은 참 다른 사람들입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고결한 신분이었던 소혜의 삶과 기방에서 나고 자라 양반의 소실이 된 윤금의 삶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둘은 꽤 닮았습니다. 같은 사람을 죽이고자 마음 먹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두 사람이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비록 소혜가 윤금의 약점을 알고 그것을 숨겨주는 대신 자기를 돕게끔 하긴 했지만, 왠지 소혜가 윤금의 약점에 대해 말하지 않고 그저 느긋하고 진솔히 도와달라 말했더라도 윤금은 소혜를 도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모인 윤금은 사람의 진심이 통할 사람이었으니까요. 소혜도 그걸 모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사람을 미워하려면 그 사람을 그만큼 잘 알아야 했을 테지요.

그런데도 윤금에게, 자신이 제 아비의 숨통을 끊어놓았다는 이야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정실의 딸인 소혜가 나의 약점을 쥐고 있다는 점을 각인시킵니다. 소혜는 윤금을 여우에 빗댓지만 저는 오히려 소혜가 더 여우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졌어요. 남자를 꾀는 요물이라는 의미의 여우가 아니라 교활하고 영악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여우 말이에요. 은근히 윤금을 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집착적인 모습도 보이고요. 굳이 윤금을 동물에 빗대자면…토끼? 토끼는 겉으로 보기엔 순해보이지만 의외로 참지 않는 동물이거든요.

욱재는 소혜와 윤금 두 사람과는 상반된 욕망을 지닌 인물입니다. 소혜와 윤금의 행동과 욕구는 ‘본인의 자유’에 기반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반해, 욱재는 ‘남을 속박, 구속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으로 보여져요. 소혜, 윤금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인 욱재가 그들의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더 닮았다고 느껴지는 듯합니다.

앤솔로지에 실린 분량의 소설을 읽을 때는 카페였고, 저녁 때가 되어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무척이나 설레었습니다. 작가님이 이 작품을 포스타입에 업로드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아직 완결나지 않은 이야기이고, 천천히 쓰신다고 하셨으니 다음 편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