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저건, 무슨 말이지?

내가, 너를.  돌려 말 하는 거 별로 못해서 이렇게 말하지만...좋아해.

내 귀로 흘러들어온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차근차근 조립되어 문장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지금. 아저씨가 나를? 지금 날 좋아한다고 한거야?

혼란스러운 머리가 어떠한 감정을 정의내리기도 전에 눈동자는 익숙한 그의 모습을 훑는다. 조금 떨리고 있는 눈동자, 손목을 틀어쥔 손에 베어있는 물기. 긴장하고 있는걸까? 장난이라고 치기에는 눈동자에 담긴 빛이 너무나도 뚜렸했다.

그리고, 그 단어가. 그 문장이. 좋아한다는 한마디가 진실이라는걸 알고난 이후, 가장 먼저 나타난 몸의 반응은-

"........킥..."

웃음이였다.

어떤 의미로 그가 이 웃음을 받아드릴지는 모르겠지만, 글쎄. 내가 웃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 단어는, 좋아한다는 말은 그가 아니라 내가 먼저 꺼내야할 단어였기 때문이다.

바보같은 사람. 항상 나를 도와주려하고 아껴줄려던 사람. 무채색의 세상에서 벗어나 드디어 한발짝, 세상에 걸어나올 수 있게 해준사람. 그에게 어떤 감정을 품었다면 그건 바로 나부터 였을게 당연한데. 그리고 그걸 입밖으로 꺼내기에는 너무도 무서워서, 부끄러워서 다시 구석에 숨어들었는데. 그는 또 이렇게 먼저 다가와준다.

눈앞이 흐려져,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질 않는다. 눈물에 막혀 흐려져있는 그의 얼굴을, 잔뜩 굳어있는 표정을 너머다보고싶은데. 또 그 바보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보고있을게 뻔한데-

소매로 급히 눈물을 닦아낸다. 너무 빨리 움직였던건지 주머니에 쑤셔넣었던 인형이 떨어지는것 같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지금은 단지 그의 얼굴을 더 바라보고싶다. 바보같은, 순수할정도로 착한 그의 얼굴을. 내가 울어서 걱정해주는걸까. 그의 얼굴은 방안에 꿈쩍않고 박혀있을떄, 굳게만 닫혀있는것 같던 문을 열고 날 바라보던 때와 닮아있다. 항상 그랬지. 아무도 신경 안쓰는, 오히려 기피하던 병신같은 놈한테 다가와 유난히도 잔소리를 해댔다. 쓰려져있으면 일으켜줬다. 울고 있으면 안아주었다. 우울해보이면 괜히 장난을 쳤다.

"바보같은 노땅이...."

다시 시아가 흐려진다. 닦아내도, 닦아낼수록 눈물이 솟아나와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바보같은 놈은 나다. 먼저 다가와주기만 했던 사람에게 정말 할 말이 이것밖에 없는거야?

어느새 일어나 날 걱정스럽다는듯 내려다보는 그와 시선을 마주쳐보려고 애를 써본다. 눈물에 가려 흐리게만 보이는 그의 얼굴을 항해 웃어보인다, 아니 웃는것처럼 보이려고 했다.

"나도 좋아해. 망할 아저씨."

사실은, 말할수 있는것 보다 훨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