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H와 G의 근황]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문화예술 긴급지원이 뜨고 난리도 아니다. 사실 우리는 보통 4월 즈음까지 일이 별로 없는데, 갑자기 코로나19로 긴급지원금이라며 공모가 열리니 낯설다. 정부에서 문화예술에 지원해줄 수 있는 자금이 이렇게 많았던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조직에 들어가서 또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10년째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다. 연말 즈음 하던 사업의 정산을 하고, 연초가 되면 새해에는 일이 있을까 없을까 불안하게 기다린다. 알고 있거나 소개 받은 아티스트들과 문화재단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기금 지원 신청서를 써내기도 한다. 빠르면 3월, 늦으면 5월이나 되어야 그 기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있다. 그 기금을 받아도 기획자라는 역할은 기금의 10퍼센트 정도를 사례비로 받게 된다.  2020년 4월 현재는 이미 불합격 통보를 받은 지원서, 아직 심의대기 중인 지원서, 누가 합격한 공모사업에 구성원으로 참여해달라는 제안이 상황이다..

[일을 그만두고 좋은 관객이 되고 싶은 H]

H는 늘 일이 그만 두고 싶다고 말한다. 꼭 돈 때문은 아니다. 보통 일을 때려치울 때 ‘사람이 힘들어서’라는 이유를 일 순위로 꼽던데 그 말이 맞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드물게 안정적인 조직에도 있어봤지만 그만큼 고인 물이고 그들과 같이 썩어가는 기분이 들어서 과감히 퇴사를 결정했다. 그 후 운이 좋게 프로젝트 성격의 일을 꾸준하게 해오고는 있지만 마치 구성원들과 한 몸처럼 붙어서 일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는 회의적이다. 다수가 개개인의 능력과 인성은 훌륭하지만 조직이 되면 마찰과 갈등이 유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다.  H에게 만약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봤다. 곧 유치원에 갈 어린 자녀를 키우는 것에 몰입할건가? 프리랜서지만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기가 쉽지 않았다.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일과 삶을 병행했고, 모든 엄마들이 가장 큰 고비라고 말하는 출산부터 세 돌까지 시기를 넘기니 그나마 조금 살만하다. 밤에 덜 깨고, 어린이집에서 감기 옮아오는 횟수도 적어지고, 말이 조금 통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 다시 고비가 온다고는 하던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기로 했다. 어차피 계획한대로 흘러가지도 않을 것 같고, 틀어지는 계획으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H가 조직을 그만둘 때마다 자기 꿈은 ‘관객’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어쩌면 문화예술 곁에 머물고 싶은 마음과 일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나를 증명하기 위해 일하는 G]

G는 늘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꼭 돈 때문은 아니다. 일을 통해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니까 한다. 그리고 많지 않은 액수지만 통장에 찍힌 숫자로 조금이나마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성취감을 얻는 것이 맞지만 그건 꿈 같은 이야기라는 것도 이제는 잘 알고 있기에 기대치는 낮다. G는 예술을 전공하고 문화예술기획이라는 일을 하다 30대 즈음 결혼하고 애 낳으면 계통에서 서서히 사라진 그 많은 언니들처럼은 되고 싶지 않다. 지긋지긋해도 가장 흥미를 가지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이 계통이라는 생각을 한다. 일을 선택할 때는 제안이 들어오거나 지원사업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인 줄 알고 참여했는데 막장으로 끝맺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룰을 적용한다. - 내가 해당 장르, 주제, 콘셉트에 ‘흥미’가 있는가? - 업무 범위 대비 나의 페이는 얼마인가? -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테크닉이 십년이나 일한 지금도 여전히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위의 조건을 확인하는 것이 미약하나마 안전장치가 된다. 조직에 온전히 소속하지 않고, 프로젝트 별로 일하는 이유도 ‘끝’이 있으니까 거처를 내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별로이면 다시 같이 일하지 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는데 이건 조직에 입사했다 퇴사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로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은 것 같다. 프리랜서니까 하기 싫은 일을 거절할 때도 다른 과업으로 바빠서 참여하기 어렵다고 둘러대기도 괜찮다.

H와 G는 실은 한 사람의 두 개의 자아다. 일을 그만 두고 싶은 마음과 어떻게든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51%와 49%를 오간다. 하반기 성수기만 되면 일이 몰려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하지만 상반기 비수기에는 일이 없을까 불안해한다. 소모되는 기분이 들면 그만두고 싶었다가(H) 어떤 작업 안에서 흥미로운 요소를 발견하면(G) 소름 돋게 행복하기도 하다. 아마 HG는 이걸 반복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일을 계속하고 있을 것 같다.


글쓴이 : H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