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는 동안 2017년이 됐다. 이런 무미건조한 말을 트위터에 적으며, 별 특별한 일 없이 한 해는 시작되었다. 세상은 아직도 최순실과 박근혜로 떠들썩했다. JTBC의 이가혁 기자는 MGMT의 노래를 들으며 정유라를 뒤쫓았고 뉴스에는 정유라가 기르는 고양이가 나왔다. 벌써 대선주자가 여럿 호명됐고 관련해서 나는 반기문이 오뎅을 닮았다는 삭제된 트윗을 가장 좋아했다. 사람들은 월요일마다 출근하듯, 토요일마다 촛불집회로 향했다. 디자인 소호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해직당한 디자이너는 새해 첫 문장으로 “유서 고소 건이 기소되었습니다. 다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싶어요. 검사님 유서를 쓰고 살아남아서 기소된 거죠? 제가 죽었으면 기소될 일 없는 거잖아요. 그렇죠?”라고 적었다. 이 글은 98명이 리트윗했고, 촛불집회 누적 참가자 수는 1000만을 돌파했다. 나는 더 이상 촛불집회에 나가지 않았다.

새 마음 새 뜻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지만, 새해는 지난해의 연속일 뿐이다. 2016년의 마지막 석 달 동안,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세상은 터져 버릴 것이라는 말대로 세상은 터져 버렸다. #OO계_내_성폭력을 둘러싼 고발문과 글들을 따라가는 동안 그동안 언어화되지 못하고 묵혔던 감정과 생각이 구체화했다. 그건 끝끝내 능력 앞에 평등하다 믿고 싶었던 내 직업 앞에 ‘여성’이 붙는 걸 인정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용감하게 목소리를 낸 고발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광경들은 나에게 귀했다. 작지만 우리는 서로의 용기였다. 그래서 당시에 나는 국정농단보다 강간 문화가 만연한 현실은 그대로되, 앞서 움직이기 시작한 이들이 지쳐 기껏 열린 문이 닫히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책임 있는 정부(그땐 아직 박근혜의 정부였다)의 피해자를 배려하는 선진적인 시스템(2016년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144개국 중 116위였다.)이 절실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해외 문화예술계의 성 평등을 위한 움직임을 수집하고, 여성 정치인과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새 마음 새 뜻으로 새해를 맞이한 사람들은 오히려 가해 지목자들같이 보이기도 했다. 자숙하겠다는 다짐과 1차, 2차, 3차 사과문이 무색하게 앞에서는 활동 재개를, 뒤에서는 고소를 진행한다는 기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푸시텔과 참고문헌없음이 피해자 지원을 위한 텀블벅 펀딩을 진행했고 각각 12,121,000원, 61,831,507원을 모금했다. 쉐도우핀즈를 필두로 방청연대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트위터 사용자 매창(@janesonne), 션(@bornofanangle)은 각종 지원센터를 알아봐 주는 형태로 연대를 하기도 했다. 2016년의 겨울과 밀접했던 시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돌아왔다. 그동안 대통령이 바뀌고 사람들은 세상이 변했다고 기뻐했다. 나의 세상도 그만큼 변했나? 책임 있는 정부(지금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문재인의 정부다)의 피해자를 배려하는 선진적인 시스템(2017년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144개국 중 118위다.)은 얼마나 준비됐나?

“공동 토론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라지지 말자’라는 말이었다.”

사라지지 말자고 다짐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지난 1년간의 사실적 성취나 실패를 갈무리하는 것보다 우리가 체감하는 세상은 얼마나 변했는지 담고 싶었다. 설문을 통해 수집된 49명의 목소리가 이 글 여기저기 나의 목소리와 겹쳐 인용돼 있다. 이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글에서 나는 문화계에 종사하는 연대자이며 피해자다. 30명의 20대, 20명의 30대, 1명의 40대다. 43명의 여성이자 5명의 남성, 1명의 논바이너리다. 우리가, 내가 지나온 지난 1년은 이러했다.

같지 않은 사과문이라도 봤으면 다행인가? 변명문이나 해명문으로 읽히는 사과문조차도 쓰지 않는 자도 있었다. 그들은 다만 고소장은 잘 써냈다. 고발을 이유로 고소를 당하거나 고소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이만 50여 명에 달했다. 법 앞에서조차 우리는 평등하지 않음을 알기에 고소를 하겠다는 협박만으로도 목소리가 사라지기도 했다. H대 아카이브 계정는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가해 지목자들이 꾸역꾸역 사과문에 담았던 잘못, 사과, 반성, 후회와 책임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였을까? 게다가 그들의 ‘재능’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은 어찌나 많은지, 그들은 다시 작업하고, 커리어를 쌓고, 상을 타고… 일상에 복귀했다. 고발자는 충격에 신경정신과를 다니고, 와중에 고소에 대응하기 바쁘고, 가해자들이 일상을 이어 가는 것을 보며 일상을 이어 가지 못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여전히 누군가 피해를 보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침묵하지 않은 피해자만 더 ‘손해’인 모습이 낯설진 않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절망스러웠다.

가해자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어떤 어른은 팝콘이라도 집어 먹으며 구경하고 있는지 자신이 미워하던 사람이 추락하는 걸 보며 한껏 신나서 떠들었다. 어떤 어른은 목소리를 보태는 내게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싶어 했다. 당해 본 적도 없다면서, 어떻게 안다고 자신하는지 얕은 짐작으로 아는 체를 해댔다. 혹은 짐짓 정중한 말로 걱정을 한다며 나를 괴롭혔다. #OO계_내_성폭력에 고발된 내용의 심각성에 동의한다던 ‘선생’은 댓글을 지우며 기억도 지웠는지 당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 달라던 요청이 무색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 역시 지난 1년간 지켜보았다. 그들은 똑똑한 만큼 오만해서 반성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들이 관련 없다고 모른 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록 고발로 드러났던 폭력은 여성만의 현실로 ‘축소’된다. 그 똑똑한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고 알고도 그런다는 건 믿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버거웠다. 이 세상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느끼지도, 하지도 않아도 되는데 이 세상을 바꾸려는 우리는 절망하면서도 계속 싸워야 한다. 우리가 지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흑인 여성 인권운동을 다룬 브루클린뮤지엄의 전시 제목은 ‘We Wanted a Revolution’(우리는 혁명을 원했다)였다. 단순한 변화가 아닌, 혁명을 외치는 흑인 여성 작가들의 작업을 보며 나는 우리가 혁명 그 이상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잘 살고 있는 가해자들을 바라보며, 변하지 않은 사람들을 확인하며 우리가 실감하는 과제의 크기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져만 간다. 실효성이 거의 없는 법도 바꿔야 하고, 2차 가해에 대한 인식이나 피해구제안도 마련해야 하고, 남성 중심의 권력 관계도 바꿔 내야 한다. 이런 사회적, 제도적 변화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업계에서 단호하게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가해자를 제명하고 본보기라도 보여 줘야 한다. 모두 다 해내기엔 역시 1년은 너무 짧았다.

“‘피고인을 징역 8 년에 처한다. 피고인에 대하여 20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한다.’ (…) #문단_내_성폭력 고발 운동이 확산된 뒤 처음으로 가해자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어렵고 더디고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더라도 작년의 목소리들은 분명히 유효했다. 함께 목격하며 각성한 많은 이들이 있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움직임들은 각자의 결과물을 냈다. 올해, 확실히 언론이나 서점 매대엔 ‘페미니즘’이 자주 등장했다. 직접 정부와 국회의원과 협력해 움직임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도 있었다. 우리가 모일 수 있는 자리도 자주, 많이 마련됐다. 비록 일부지만 직간접적 처벌도 이뤄지는 모양새다. 김요일은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13을, 배용제는 징역 8년을 선고8받았고, 남배우 A 성폭력 사건 항소심도 유죄 판결이 났다. 함영준과 최흥철은 큐레이터 자리에서 물러났다. 언론노조를 통해 디자인 소호 건으로 고통받던 피해자도 직접 사과, 고소 철회, 책임 있는 보상을 약속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조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이 흐름이 쉽게 꺼지지 않았다는 점은 그래서 성과로 기록할 만하다. 텀블벅을 통해 연대자들의 힘으로 발간되는 «소문자에프», «세컨드», «펢», «여성생활», «사심», «참고문헌없음»에 실린 목소리부터 «문학과사회», «릿터» 등 문예지, 월간 «디자인»의 <지금,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10>, 최근 «글짜씨 15: 안상수»에 수록된 김동신의 <선생님, 페미니즘을 읽으십시오>까지 문화계의 다양한 곳에서 활자로 기록되는 목소리들의 주체들이 달라졌다. ‘우(WOO)’, ‘노뉴워크’, ‘탈선’, ‘봄알람’, ‘오픈페미니즘’, ‘찍는페미’ 등의 활동 역시 기억한다. 텀블벅에서의 여성주의 굿즈나 독립출판물, 행사 후원도 여전히 활발하다. 우리의 눈은 문화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최근 한샘, 현대카드 등 직장 내 성폭력 고발과 이곳에 세세히 기록하지 못한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 학교, 직장, 가정 내 일어나는 좀 더 보편적인 이슈 역시 우리의 살과 맞닿아 있다. 관심을 끄려고 해도 우리 삶 곳곳에 맞닿아 있는 이슈들에서 고개를 돌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찻잔 속 태풍이라고 하기엔 그 찻잔이 너무 많지 않나? 지난 1년 동안 시간은 다행히도 그냥 흘러가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