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어라운드바디(https://aroundbody.com/blogPo)st/0006)

연말이면 으레 들리고 또 치루는 ‘송년회’라는 이름의 행사. 이래저래 아는 지인들은 많지만, ‘송년회’라는 행사는 나와는 다소 좀 거리가 멀다. 동문 모임이라는 것도 고리타분하고(실제 아는 동문도 없을뿐더러), ‘소속감’이라는 걸 경계하는 나로선 특정 모임이나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는 송년회라는 행사는 관습적일 뿐만 아니라 형식적이고, 때에 따라서는 재미없다.

그런 나에게 작년 말 어떤 모임의 송년회 참석 제안이 있었는데 나답지 않게 바로 참석 의사를 밝혔다. 디자인계의 페미니스트 모임 FDSC(Feminist Designer Social Club)의 송년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FDSC는 훗날 한국 현대 그래픽 디자인 역사가 기술된다면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첫 여성주의 모임이자 실천으로 기록되어 마땅한 여성 디자이너 정책 연구 WOO의 계보를 잇는, 한국 디자인계의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이다. 2016년 문화계_내_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발족한 WOO는 디자이너 김린을 회장으로 추대하며 일 년 동안 디자인계 안팎의 사건들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문제제기하고, 행동 강령으로 옮겼던 전례 없는 한국 디자인계의 여성주의 매니페스토였다. 이 모임은 2017년 12월 서울 SEMA 창고에서 열린 전시 ‘W쇼’를 끝으로 일 년 동안의 한시적 활동에 종지부를 찍었다. 기약 없는 이별 때문이었을까. WOO 발기인 중 한 명이자 때에 따라서는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지지하고 응원했던 나는 ‘W쇼’가 열리는 그날 전시장에서 청승맞게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WOO 이후는 무지개 너머가 아닌, 다시 재탕되는 과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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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같은 상큼한 이미지로 FDSC가 나타난 게 그다음 해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스마트폰 액정 화면 너머로 그저 이 모임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느 날, 나에게도 호출이 왔다. 그리고 회원으로 가입했다. 양민영, 신인아, 김소미, 우유니게 디자이너가 뭉쳐서 만든 이 모임은 여성 디자이너들의 지속가능성을 희망하며 시작했다. ‘디자인과의 그 많던 여학생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이 질문은 너덜너덜해질 만큼 진부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가열찬 문제 제기에 비해 해결책은 게을렀다. WOO가 한국 디자인계에 최초로 여성주의 깃발을 꽂고, 그래서 일종의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며 디자인계의 위계 문제와 성비 균형 그리고 여성 디자이너 프로모션에 발동을 걸었다면, FDSC는 민첩하고 광활하게 디자인 현장 안으로 파고들고 또 뻗는다. 아주 깊고 넓게. 그것은 톡 쏘는 레몬과도 같다. 그 자체로선 신맛이라는 공격성을 장착하면서도 특정 맥락 안으로 편입될 때는 레몬처럼 외양은 감각적이고 산뜻하며, 내용은 감칠맛을 낸다.

여러 차례 회원 모집 행사를 할 때마다 발군의 브랜딩 실력을 뽐내는가 하면(하기야 다들 너무 뛰어난 디자이너들이니깐!), 단순히 브랜딩만 잘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가 넘쳐흐른다. 이들은 심지어 내가 한국에서 가장 싫어하는 행사 중 하나인 ‘운동회’까지 치러냈는데, 비록 참석은 못 했지만 내가 본 운동회 중 시각적으로 가장 노련했고(노랑과 검정의 강렬한 대비는 탁월했다!), 여성 디자이너를 직접 방문하는 ‘스튜디오 어택’부터 학생 대상 디자인 워크숍 ‘fflag high’, 팟캐스트 ‘디자인 FM’ 운영과 동명의 책 출간(네이밍도 어쩌면 이렇게 잘할까?)까지 따라잡기에도 숨찰 만큼의 여러 모임과 행사들을 기획하고 치러냈다.

FDSC 활동의 에너지는 커뮤니티 안과 밖에서 고르게 분포한다. 안에서 회원들은 여러 소모임을 통해 제도권의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실무 감각을 스스로 찾고 학습해 나간다. 디자인에 관한 정보를 서로 주고받고, 관련 전문가를 섭외하고, 사업 감각도 익힌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돈 잘 버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깐, 그리고 이게 엄연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장은 열정이니, 꿈이니 하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니깐 고구마 같은 현장의 목 메임은 스스로 해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혼자는 힘드니깐, 함께 한다. 그래서 신나고, 즐겁다. 그 와중에 FDSC는 정기적으로 바깥을 향해 문을 열고,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매체가 된다. ‘페디소’라는 이름으로 회원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소개함으로써 ‘여성’이란 이름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디자이너들의 존재감을 화사하게 조명한다. 그리고 방송을 하고, 이걸로 뚝딱 책도 만든다. 이제는 글도 써서 발행한다.

FDSC는 안에서는 내실을 다지며 바깥으로는 몸집을 키워나간다. 함께 키워나가는 몸집 속에서 더 많은 여성 디자이너들이 얼굴을 드러낸다. 불과 2~3년 사이의 변화이다. 가까운 과거의 WOO와 지금의 FDSC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다시금 과거를 되풀이했을 것이고, 우리 이후의 세대는 다시 똑같은 질문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난 이 질문을 나의 12살 된 딸이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