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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호

21대 총선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고, 2900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매긴 성적표는 배부됐다. 그 결과에 대해 수많은 연구자와 논평가가 훌륭한 분석을 쏟아낼 것이지만 적어도 나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지난 총선이 남긴 다음의 두 가지 수수께끼다.

사실 개표 결과에 신경을 쏟다 보니 잊혔지만 지난 총선의 첫 번째 수수께끼는 예상을 압도적으로 뛰어넘은 높은 투표율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우려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유리밭을 걷는 듯한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민주화 직후 치러진 1988년과 1992년 두 번의 국회의원 총선이 70%를 상회하는 투표율을 기록한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의 투표율은 어떻게 봐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코로나바이러스와 복잡해진 선거제도, 극단적으로 잠잠한 유세 활동에도 불구하고 66.2%의 유권자가 투표소로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총선이 던지는 두 번째 수수께끼는 당연하게도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여당의 압승과 야당의 실패로 요약된다. 민주화 이후 지난 모든 총선거에서 특정 정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획득한 것은 2004년의 ‘탄핵 총선’과 2008년의 ‘이명박 총선’인데, 당시 여당은 각각 152, 153석을 얻었다. 그저께 치러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서만 163석을 얻었고, 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까지 합하면 180석이다.

이런 이해하기 힘든 두 개의 수수께끼에 대한 가장 간단한 답변은 정치학자들이 즐겨 이야기하는 ‘애국 결집 효과(rally ’round the flag)’다. 전쟁이나 국가적 재난을 맞았을 때 국민들이 국난 극복을 위해 현직 대통령과 여당에 지지를 몰아준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9·11 사태 직후 인기 없는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90%대로 급등했던 것처럼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싸우는 정부에 힘을 몰아주었다는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기적 설명은 구조적인 변화에 대한 시각을 흐리게 만들며 다음과 같은 가상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만약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지 않았다면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했을 것인가? 만약 야당이 성공적인 공천을 하고 더 나은 당 대표와 선거대책본부장을 임명했으며 선거 마지막에 막말 파문이 없었다면 여당 과반을 저지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의 보수계열 정당이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때는 위에서 언급한 2008년에 치러진 총선이었다. 서울·경기, 중산층, 이념적 중도의 삼중(三中)을 공략했던 한나라당은 한국의 ‘전통적 안보 보수’와 ‘합리적 시장경제 보수’가 구성했던, 생각해 보면 상당히 이질적인 양 집단을 아울렀던 최대연합이었다. 조사에 의하면 이 집단의 코어 그룹은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켰고, 상당수는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에 비례투표를 던졌으며, 촛불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던 것으로 나타난다. 야당은 이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흡인하더라도 과반이 될까 말까 한 선거에서 이들을 충분히 끌어올 비전도, 신뢰감도 제공하지 못했다. 이는 선거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 흐름의 연장선상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유권자들에게 미친 영향이 있다면 그것은 ‘국가의 재발견’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마스크 쓰고 비닐장갑 끼고, 유권자들 절박한 심정으로 투표

세금을 거둬가고 시장을 규제하던 국가가 동시에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조율하고, 무너진 경제에 호흡을 불어넣을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임무를 띤 국가이기도 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 순간, 한국의 ‘시장경제 보수’가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견지할 수 있는 입지는 애초에 사라진 셈이었다. 이들은 기권했거나 아니면 약간이라도 더 신뢰할 수 있는 정당과 후보를 선택했을 것이다.

‘국가의 재발견’에서 또한 우리는 첫 번째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다. 그런 정부를 구성하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 누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누가 지금 지역의 시장이고 구청장인지가 너무나 중요한 만큼 누구를 국회로 보낼 대표로 선출하는지가 너무나도 절박하게 중요한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낀 채 기도하는 심정으로 기표소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들이 지지자였건 반대자였건, 그런 바람들이 파란색이었건, 분홍색이었건, 그 진솔한 그 열망들을 받아줄 수 있는 21대 국회의 출범을 무거운 마음으로 축하할 따름이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정치학 연구방법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선거조사(American National Election Studies) 펠로와 플로리다대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정당학회 부회장이며 중앙일보 ‘중앙시평’의 필진이기도 하다. 『이슈를 통해 본 미국정치』『한국정치의 재편성과 2017년 대통령선거 분석』 등을 공저했다.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