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짢음의 역사

술과 라면, 과자를 들고 갈 수 있는 분위기파 횟집. 회만 판매하고 포장마차형 자리를 제공하는 가게. 불닭볶음면과 쫀득한 광어회 한 입이면 세상 전세 낼 수 있는 곳이기에 몹시 흥분 중이었다.

흥분은 언짢음이 되었다. 1시간 전부터 전조증상이 보였고 결국 파토났다. '여친 일이 안 끝나. 왜 안 끝내지. 11시까지로 시간 늘었지? 아.. 아직 협의 중이라네. 나 여친 데려다주고 가야 돼.'

7시 반, 출발한다 카톡은 여친을 집에 데려다준다는 뜻이었고 루트는 이러했다. 제기동 → 독산동 → 불광동. ❔ 약속이 8시인데 서울 한 바퀴를 다 돌고 오는 건가. 10분 후 전화벨이 울렸다.

'불광까지 가면 9시 반 정도 될 것 같은데 어떡하지?' → ❓

다음에 보자하고 급하게 저녁 준비하는 중이었다. 8시 40분, 또 한 번의 전화가 왔다. '지금부터 40분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 어떡할까?' → ❔❓❔. 그냥 담에 봅시다. 매우 언짢음으로 진화했다.

  1. 언짢음 포인트

첫 번째 포인트는 파토. 나가리를 직감한 순간, 드넓은 세상에서 뛰어노는 불닭볶음면 옷을 입은 광어 한 점이 지나갔다. 그리고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떠나갔다. 오늘 못 먹는 거다.

두 번째 포인트는 일관성 있는 3가지 멘트. 7시 - 여친이 일 끝낼 생각이 없다는 것, 7시 40분 - 도착 9시 반인데 어떡하지?, 8시 40분 - 40분 걸린다는데 어떡할까? 모두 남 탓으로 들리는 멘트였다.

약속 제안을 한 건 본인이고 시간을 정한 것도 본인인데, 왜 문제는 남에게 돌리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