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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가 점점 더 좋아진다. 아직 자신있는 요리나 할 줄 아는 요리의 가짓수는 턱없이 적지만, 꼭 잘해야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상태 변화

내가 생각하는 요리는 상태를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과학실험이라고 생각하는 건데, 무슨 헛소리냐면 이런 소리다. 우리는 재료(A)를 구해서, 원하는 형태(B)로 만든다. 이때 재료는 채소, 과일, 고기, 생선, 유제품, 소스 등이고 원하는 형태는 구이, 무침, 조림, 찜 등이다. 결국 A -> B로 만드는 작업이 요리라고 할 수 있다. B라는 결과물을 먹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요리를 실험이라고 생각하면, 알아야 할 것들이 갑자기 많아진다. 우선 목표로 하는 B가 어떤 상태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물론 A의 특성도 잘 알아야 한다. 더불어, A -> B 를 만드는 과정들에 대한 기작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B를 만들어내기 위한 최적의 경로를 찾을 수 있고, 나아가 그 이상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기작을 모르고서는 기대할 수 있는 B의 폭은 매우 좁아진다. 대신 행운에 기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요리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 보다가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기작에 대한 두루뭉술함이었다. 이렇게 하면 육즙이 가둬진다(액체가 그렇게 쉽게 가둬지나?). 잡내가 날아간다(잡내가 뭐고, 어떤 작용 때문에 그렇게 되나). 끓는 물에 몇 분 삶으면 된다(왜 몇분인가, 냄비마다 결과가 달라질 것 같은데...). 이 때문에 여러 단점이 생긴다.

실패하면 뭐가 잘못된 건지, 뭘 더 잘해야 하는 지 알기가 어렵다. 물론 다음 시도에서는 뭔가를 변경해볼 수 있지만, 그 변경이 운이나 감에 의존한다면 성공적인 요리는 자연 선택 정도의 시행 착오가 필요해진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변형을 가진 레시피들이 생겨나는데, 공돌이의 마음으로 봤을 때 대부분은 쓸 데 없는 짓일 확률이 높다.

쓰다보니 방향이 이상해지는데, 순전히 초심자의 눈으로 봤을 때의 감상이다. 장인의 세계가 그렇듯이 분명 내 이해나 능력 밖의 어떤 세계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요리를 잘하고 싶은 공돌이가 봤을 때 과학적 접근이 필요해보인다는 이야기이다. 과학적 사고는 발전을 낳을 확률이 높고, 게다가 재밌으니까.

상태의 변화는 크게 물리적/화학적 변화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물리적 변화

재료를 자르고, 다지고, 가는 등의 행위가 대표적이다. 재료를 더 작게 나눌수록 표면적이 넓어져 다른 재료들과의 반응이 빨라진다. 주로 향신채를 다지거나 가는 경우가 많다. 꼭 표면적이 아니더라도 식감을 위해 자르는 경우도 많다. 한 음식에 들어가는 씹히는 재료는 보통 비슷한 크기로 써는데, 재료들 간의 이물감이 덜하기 때문인 것 같다.

표면적이 넓으면 반응이 빨라지니 향이 금방 날아가기 쉽다. 마늘이나 생강을 다져놓으면 편하지만, 아무래도 통마늘을 그때그때 바로 까서 쓰는 것이 본래의 맛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요리의 목적이 항상 최상의 맛을 끌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져서 지퍼백에 얼리는 정도가 현실적인 타협점이 아닐까 싶다.

샐러드처럼 여러가지 재료를 섞는 것도 물리적 변화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섞는 것 만으로 1+1을 3이상의 결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하몽과 메론, 간장과 고춧가루, 딸기와 초콜렛, 트러플오일과 짜파게티 등. 각각의 맛을 잘 알고 상상하는 능력이 필요한, 창조적 영역이다.

화학적 변화

재료에 열을 가하면 여러가지 변화가 생긴다. 보통 '익힌다'고 표현하는 가열이 가장 대표적인 화학적 변화이다. 단백질은 열을 가하면 변한다. 대부분의 화학적 반응이 그렇듯이 이러한 변화는 비가역적이다. 재료마다 반응하는 온도는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달걀 흰자는 82도 정도에서 적당히 익고, 노른자는 70도 정도에서 적당히 익는다. 쇠고기 미디엄 레어는 54도 정도로 익힌 것이다.

이러한 정보를 알고 나면 맛있는 삶은 달걀을 만들기 위한 질문이 기존과 달라진다. 물에 식초를 넣거나, 끓는 물에 몇분, 불을 끄고 몇분 식의 무작위적인 시도에서, 흰자는 82도로 익히면서 노른자는 그보다 낮은 온도로 익히기 위한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가설 설정과 실험으로 바뀐다.

쇠고기를 미디엄 레어로 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비드하는 것이고, 그 다음 방법은 앞면을 몇분, 뒷면을 몇분 식이 아니라, 팬이나 화력과 상관없이 고기 중심에 온도계를 꽂아 54도 까지만 익히는 것이다.

열을 가하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발효, 숙성도 있을 텐데 이건 아직 잘 모르겠다.

결론

글이 무한정 길어지는 것 같아 빨리 마무리하면, 요리는 과학 실험 같아서 재밌다. 재료의 종류와 물리적, 화학적 변화의 가짓수를 생각해보면 변화의 가짓수가 무한대에 가깝다는 것도 재밌고, 원리를 알고 적용했을 때 의도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재밌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요리를 맛있게 완성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이다. 앞으로도 종종 레시피나, 요리와 관련된 글들을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