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녹색당 대의원대회에서 녹색당 5기 공동정책위원장단은 이런 다짐을 읽었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 카톡방 강간문화에서부터 을지로재개발까지, 도시의 주거문제에서부터 제주 비자림로 개발까지, 복잡하고 거대하게 굴러가는 이 사회 시스템 곳곳을, 분절되어 보이지만 하나로 이어져 있는 모순의 본질을 꿰뚫고 변화시키는 힘은 녹색당의 장기적인 관점과 구체적인 실천력에서부터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다음 장면은 우리가 축적해온 관점과 행동을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다른 동료-시민들의 일상에 접속하는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그 재구성의 고리가 정책이고, 그 고리들을 연결한 정치의 언어를 발명하는 것이 정책위원회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해 11월 9일, “2020 녹색당 정책대회 - 기후위기를 돌파하는 질문들 Real Green New Deal”이 열렸습니다. 총선을 앞둔 이번 정책대회에서 우리는 절박한 기후위기의 시간표를 직시하고 기후위기와 불평등, 페미니즘을 정책의 언어로 연결짓고자 했습니다. 미래를 위해 지금 변화를 이끄는 사람과, 소유하지 못해 삶터와 일터에서 오늘 휘둘리고 밀려나는 사람들, 그리고 존재 자체를 부정당해온 과거를 딛고 살아가는 혐오의 생존자들이 개발과 성장, 소유 중심의 이해관계보다 강하게 서로를 끌어안는 언어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언어를 비집고 나오는 삶의 문제들을 다시 정책으로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이미 여러차례 회자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 제48차 총회 채택)는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폭을 1.5℃로 제한하기 위해 CO₂를 얼마나 감축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평균온도 상승폭을 1.5℃로 제한할 수 있다면, 파리협정이 지향하는 2℃ 상승에 비해 해수면상승, 기반시설 피해, 생물다양성 감소 등의 위험 요소를 조금 더 줄일 수 있다고 하는 과학적 근거가 ‘1.5도℃ 특별보고서’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1.5℃로 평균온도 상승폭을 제한하기 위한 전세계적인 과제입니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 2010년 대비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45% 수준으로 감축해야 하며, 2050년에는 탄소 배출과 흡수가 완전히 상쇄되는 ‘Net-Zero’를 달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보고서는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위해 에너지, 토지, 도시 및 기반시설, 산업 시스템 전반에 걸쳐 ‘빠르고 광범위한 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단지 보고서 상에서만 존재하는 미래적 위협이 아닙니다. 장마가 사라진 여름, 국지성 호우로 인한 피해, 폭염과 혹한, 부쩍 늘어난 가을 태풍 등 우리 일상은 이미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년 사이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미세먼지 역시 지구 온난화로 인한 대기정체 현상이 중요한 변수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이렇게 빠르게 우리 생활세계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녹색당은 이 치명적이고 강력한 위기 앞에서 더 많은 동료시민들을 기후위기 시대를 함께 돌파해갈 동료시민으로 초대하고, 광범위하고 장기적이며 확실한 전환의 장면을 준비할 정치적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2020년 총선은 녹색당에게 그런 기회입니다.

지금, 녹색당이 제안해야 할 미래, 한정된 자원의 분배로 집행되는 정책이 향해야 할 방향은 어느 쪽일까요?

먼저, 우리는 그 미래와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기 할 때 시민들의 일상이 놓여있는 불평등의 장면들이 기후위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기후위기를 만든 탄소기반경제가 위치한 자리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탄소기반경제는 산업, 소비는 물론, 교육, 공공정책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압축적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철강, 자동차 등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들과 국토의 생태적 복원력을 약화시키는 각종 건설 사업이 역할해왔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게 만들어진 부는 공동의 번영을 위해 축적되고 활용되기보단 부익부빈익빈의 정도를 더 심각하게 하는데 사용된 것 같습니다. 자산 상위 10% 계층이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포함하여 전체 부의 66%이고, 하위 50% 계층이 소유한 부는 전체 부의 2%라는 한국사회의 지표가 이를 증언합니다. 게다가 이 시스템은 암묵적으로 사회적 재생산 영역에서의 여성의 무급노동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젠더 불평등을 강화했습니다. 삶의 터전인 지구 환경을 이렇게 파괴하며 성장한 시스템으로부터 수혜를 받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이토록 확연히 나뉘고, 사실상 대부분의 존재들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생태적 삶의 터전과 사회경제적 삶의 터전)이 많다는 점에서 억울한 심정까지 듭니다. 또한, 기후위기의 위협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존재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 농업 또는 어업에 종사하는 지역사회, 야외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 생태계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다양한 비인간동물들입니다. 불평등 구조는 기후위기라는 조건에서 더 강력하고 무섭게 작동하는 셈입니다.

녹색당이 가리키는 정책의 방향과 이를 통해 제안하는 미래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강화한 이전의 시스템을 전방위적으로 전환하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남성중심, 소유자 중심, 정상가족 중심, 임금노동자 중심, 비인간동물을 배제한 인간 중심의 사회정책 설계로부터 소외되었던 이들을 적극적으로 호명할 때, 전환의 가능성이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일상, 이들의 언어로 재구성되는 사회의 모습이 곧 녹색의 새로운 사회계약(Green New Deal)이 될 것입니다. 2050 배출제로는 이 때 당연한 우리의 전제입니다. 탈탄소화 전략에 기반한 새로운 일상의 제안은 GDP라는 과거의 지표를 대체할 새로운 번영의 기준 위에서 가능할 것입니다.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사회정책은 이 기준과 함께 재구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본소득, 평등한 돌봄과 성평등, 모든 종의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주거, 일터에서의 평등과 안전 등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할 것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탈핵, 탈토건, 폐기물 Zero 등 매듭지어야 할 것들과는 하루빨리 결별하며, 개인의 생존경로가 각자도생의 무한경쟁에 놓이거나, 부동산 자산소득 취득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지속가능성에 기반해 함께 번영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가 2020년 총선 시기 제안할 미래와 정책의 방향에 포함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녹색당은 오늘을 뒤집고 내일로 간다." 정책대회에서 함께 읽은 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오늘을 뒤집는 담대함은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관점의 질문에서 출발해 틈을 파고드는 구체적인 답으로 귀결될 때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답을 축적해나가는 책임있는 토론을 약속합니다. 2050년 탄소배출제로, 정확한 목적지까지 서로의 삶을 놓치지 않으며 함께 나아갑시다.

녹색당 5기 공동정책위원장 백희원, 이태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