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하지 못하고

본문: 창세기 27:5-23

과거 중국의 진시황은 대륙을 통일한 후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까이 한 사람은 오직 환관 조고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환관 조고를 통해 검증된 인물만 만났고, 보고를 받을 때도 반드시 그를 통했습니다. 그런데 진시황이 세상을 떠난 후 그렇게 신임했던 환관 조고가 유언장을 위조했습니다. 큰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유언장을 바꾸어 열여덟 번째 아들에게 나라를 물려주는 것으로 조작해버렸습니다. 희대의 사기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고려 말 공민왕은 신돈이라는 승려에게만 의지했습니다. 주변에 고관들과 신하들이 있었지만, 오직 신돈의 말만 들었습니다. 열두 살에 왕이 된 조선의 열세 번째 왕 명종 역시 환관을 끼고 살았습니다. 명종이나 공민왕이나 진시황이나 주변에 신하가 없었겠습니까? 훌륭한 신하들, 공부를 많이 한 신하들, 나라를 누구보다 사랑한 신하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신하들과 함께 일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라는 조직이 있고 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과 시스템 안에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크고 작은 조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는 가정도 있고 일터도 있고 국가도 있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모든 조직에는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신앙생활에 그대로 가져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하나님의 백성을 만나게 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만나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눈에 보이는 여러 조직을 만들어주셨습니다.

1. 이삭의 실수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가정에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을 두신 이유는 가정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 조직, 여러 체계와 시스템을 만들어 주시고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이삭은 하나님이 이미 그에게 주신 선물, 그 조직을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그 결과 빚어진 일들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창 27:5)

이 본문은 매우 이상합니다. 지금 이 가정에 아주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정의 장자권을 계승하는 결정적인 자리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삭으로, 이삭을 통해서 에서냐 야곱이냐, 장자권을 물려받을 사람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 결정의 주체가 과연 누굽니까? 이삭과 리브가가 함께 의논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리브가가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불러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즐기는 별미를 위해서 너는 가서 사냥하여 고기를 잡아와라. 그걸 내가 마음껏 먹고 너를 축복할 테니 어서 가서 고기를 잡아와라." 그 이야기를 리브가가 문 밖에서 들었습니다. 리브가가 누굽니까? 이삭의 아내 아닙니까? 이삭의 일생의 동역자, 평생의 동역자 아닙니까? 그런데 일생의 동역자인 리브가가 이 중요한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하고 문밖에서 들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정상입니까? 옳은 일입니까?

이삭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하고 난 다음에 리브가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이삭은 자기 문제로 가지고 왔습니다. 자기 문제를 가지고 와서 20년 동안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 문제를 끌어안고 함께 기도하고, 엎드려서 20년이 지난 이후에 하나님이 이 가정에 에서와 야곱 쌍둥이 형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부부가 함께 작은 일이든지 큰일이든지 같이 의논하고 기도하고, 함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리브가를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자기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자기 일을 자기 멋대로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조직과 시스템을 주셨습니다. 대통령은 국무위원들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장관들과 함께 일해야 하지 않습니까? 국민들이 자기 지역구에서 대표로 뽑아서 국회로 보낸 국회의원들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뜻과 방향을 달리하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을 때로는 설득도 하고 때로는 만나기도 해서 함께 같은 뜻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국가를 위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일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는 당회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재직회도 있습니다. 공동회도 있습니다. 공적인 기관과 공적인 조직이 있습니다. 이 공적인 조직을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사적 조직을 통해서 일하면 교회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에 하나님께서 남편과 아내를 주셨습니다. 돕는 배필을 주셨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실 때 돕는 배필을 허락하셨습니다. 히브리어로 '에제르 크네그도'는 무작정 돕는다는 말이 아니라 반대하는 돕는 배필입니다. 때로는 협력도 하고 때로는 잘못되었으면 반대도 하는 자가 돕는 배필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리브가를 돕는 배필로 허락해 주셨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공식적인 시스템입니다. 이 공식적인 가정의 시스템을 철저하게 배제시키는 것은 문제를 전제로 하는 행동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 혼자 200만 명이 넘게 지도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조직을 주셨습니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이 조직을 통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돕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조직과 시스템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끌고 가는 힘이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행 6:2-4)

사도들이 초대교회를 이끌어 가는데 하나님께서 시스템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일곱 집사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구제하는 일과 교회 살림살이를 맡게 하시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전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조직이고 이것이 시스템입니다. 만약에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것을 순종하지 않고 일곱 집사를 세우지 않고 자기들이 다 하겠다고 했으면 그 조직이 엉망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일곱 집사 가운데는 첫 번째 순교자 스데반 집사도 있었고,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한 복음 전도자 빌립 집사도 계셨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들과 함께 교회를 이끌고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하나님이 주신 가정이라는 조직을 소외시켰습니다. 특별히 믿음의 동역자 리브가를 배제시켰습니다. 그러니 올바른 결정이 일어날 리가 있습니까?

만약 우리 가정에 남편 된 사람이 아내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자기 혼자 모든 일을 결정하면 영안이 어두워진 이삭 같은 존재입니다. 만약에 우리 가정에 아내라는 분이 남편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모든 일을 결정해 버린다면 믿음의 눈이 어두워진 이삭 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가 같은 마음으로 함께 마음을 열고 의논하고, 아주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같이 결정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