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8일 07:34분경 발생한 강릉기지분기 탈선사고에 대한 촌평.

  1. 시간이 부족하신 분은 아래 100) 결론을 보기 바람.

  2. 사태를 결정한 근접 원인은 두 가지. 하나는 모종의 원인으로 21B 선로전환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실. 또 하나는 21A-21B 쌍동 선로전환기의 상황에 대해, 로컬관제측에게 21A의 상황을 21B로, 21B의 상황을 21A로 나타내도록 잘못(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회로. 회로 구성 오류로 인해 연동신호가 무력화되었고, 진행신호가 현시되어 기관사는 세자리대 고속으로 돌입, 열차가 탈선하게 됨.

  3. 근접원인 가운데 첫 번째 유형의 상황은 사실 매우 잦음. 또한 첫 번째 상황의 원인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 역시 생각보다 많을 수 있음. 조금이라도 복잡한, 다시 말해 기계의 논리 작업을 직접 투명하게, 간단히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돌아가는 기계를 다뤄본 오퍼레이터라면 공감할 부분임.

  4. 아마도 강릉역 신호담당자들도 고장이 났을 때 비슷한 경험들을 좀 해 봤을 것. 그리고 사실 거의 모든 종류의 기계가 그렇지만, 분기기 역시 얼음(서리)과 눈에 약함. 겨울에 첫 번째 유형의 고장이 늘어나는 것은 상식적인 일임.

  5. 21A-21B의 상태를 나타내는 연동 케이블이 반대로 결선된 상태인 두 번째 근접 원인에 논의가 집중되고 있음. 케이블을 건설사업자인 철도시설공단이 처음에 잘못 꼽은 채 인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또한 이후 절차가 어찌되었든, 철도공사측이 문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약 1년 영업한 것은 사실임*. 외부에서 보기에는 전형적인 책임 떠넘기기로 비춰지고 있는 듯함.

4-1) 다만, 계속해서 명시적인 대국민 사과를 해 온 철도공사가 도의적으로 우세할 것. 철도시설공단은 12월 11일 19시 현재까지 아무런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음. 제도상*, 도의상 납득하기 어려운 침묵임.

4-2) 현대 철도에서는 중요도가 높은 연동장치일수록 소프트웨어로 구현된 전자연동장치로 설치됨. 연동 회로를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여러 조작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교과서로 언급됨. 하지만 현실의 상태를 나타내는 정보 전달 장치가 망가지면 전자연동장치의 이러한 장점은 무력화되고, 지금 사고처럼 때때로 거짓을 송출하는 장치가 됨. 참과 거짓이라는 철학적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사례가 아닐까 함.

  1. 사고의 먼 원인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럿 있음. 하지만 이 건의 먼 원인 가운데, 강릉 일대의 철도시설로 논의를 좁힐 필요가 있음. 강릉 일대 철도시설의 구조는 사고의 조건을 설명할 수 있음. 반면 현재의 상하분리 구조를 결정한 철도구조개혁과 같은 요인은 관련이 있더라도 사고의 조건을 직접 설명하긴 어려워 보임*.

*다만 다음 기사는 현재의 상하분리 구조에 대해 철도공사 직원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음. 특히 경강선의 직원 시설, 강릉기지 검수고 등에 대한 지적은 그나마 부족한 직원들의 휴식 여건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함. 이런 열악한 시설 상황은 공사 유지보수 직원들의 판단력을 흐리고 집중력을 약화시키며 사기를 깎게 됨.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책임만을 요구하기 어려움. 다만 이런 사실들 역시 강릉지역에 대한 보고로, 같은 시기에 건설한 모든 시설에 일반화된다고 보려면 좀 더 많은 증거가 있어야 할 것. http://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58

http://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16

  1. 강릉지역 철도시설 구조를 이번 사고를 설명할 수 있는 원인이라고 보는 핵심 이유는 이것. 사고가 난 분기기는 없을 수 있었음. 위험의 포텐셜이 좀 더 작은, 그리고 철도시설공단의 지침에 좀 더 부합하는 방식으로 기지 인입선을 설계할 수 있었음.

  2. 현 강릉역 부지를 기지로 활용하지 않은 것이 첫 실책. 청량리나 동대구도 역 구내에 기관차사무소 등이 부속되어 있는 상황인 만큼 강릉시가 이를 거부한 것은 특별히 합리적이었다고 평가하기 어려움.

7-1) 강릉역에서 기지까지 회송열차가 추가 운행하는 것은 열차 운행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단선에 불과한 선로 용량을 깎아 먹어 현 단계 이상의 획기적인 열차 증편을 어렵게 만듬. 이 비용만큼의 편익이 강릉역 인근에서 발생하는가? 사후약방문이지만 냉정하게 물어봐야.

  1. 강릉역 부지를 기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본선상의 남강릉역에 기지를 부설했다면 문제의 분기기가 아니라 남강릉역 구내의 분기기를 활용하여 기지를 구성할 수 있었음. 본선이 복선일 경우 본선 건넘선을 활용하거나 입체교차를 마련해 기지로 진입시킬 수 있고, 지금처럼 남강릉-청량신호소간 단선이라면 건넘선을 건널 필요 없이 본선의 한쪽에만 기지 시설을 집약하여 건설하면 기지 내 차량이 본선을 건너지 않는 구조가 가능함.

  2. 지금처럼 별개로 건설된 기지가 남강릉역에 부속된 기지보다 좀 더 기능적인 구조일 수도 있음*. 이를 일단 인정하더라도, 남강릉에서 분기시켜 열차의 방향을 바꾸는 방식을 취할 수 있었음. 우회 거리는 현 망에 비해 약 2km 수준. 남강릉-청량신호장이 단선이라면 입체교차도 불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