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26:23-33
지난 4월 28일,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백낙선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1967년 마산 합포구에서 신신예식장을 개업하여 55년 동안 운영하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 무려 만 4천여 쌍에게 무료 결혼식을 선물하신 분입니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나고 자라 가진 것이라곤 사진 기술밖에 없었는데, 그 기술 하나로 길거리 사진사로 떠돌다가 31세에 아내를 만났습니다. 그 아내를 깊이 사랑했는데, 면사포 한 번 씌워주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되어 '나는 돈을 벌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웨딩드레스와 멋진 턱시도를 입혀 결혼시켜주고 싶다'는 소원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소원을 55년 동안 4천 쌍에게 이루어 주며 사셨습니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선행을 베푸니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방송과 언론에서 그를 취재했고, 2019년에는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사진값도 받지 않고 웨딩드레스, 턱시도, 신부 화장까지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하셨습니다. 이분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참 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받은 복을 나누며 살았더니, 그 나눈 복이 결국 나에게 또 다른 복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오복을 가지고 태어나서 복 받으며 살다가, 이제 살 만큼 살고 세상을 떠나니 호상입니다. 그러니 슬퍼하지 마시고 웃음꽃 피우시며 경사스럽게 장례를 치러 주십시오." 그리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사실 이 말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인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정말 큰 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복 중에 가장 큰 복, 구원의 은총을 입은 자들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복입니다.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장 큰 구원이라는 복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이 복에 겨워 사는 인생, 이 복을 흘려보내지 않고 나누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복을 흘리고 나누고 베풀면, 다른 데 가지 않고 다시 우리에게 그대로 되돌아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설계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삭 이야기가 바로 그 사실, 그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삭은 블레셋 지방 그랄에 가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한 해에 백 배의 결실을 얻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합니다.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의 우물을 메워버렸습니다. 아비멜렉이 그를 찾아와서 "이제 네가 강성하니 우리를 떠나라"고 합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랄 골짜기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삭에게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미 그곳에 옛날 우물을 파둔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삭은 그 장소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 우물을 파서 다시 가족과 함께 삽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그것마저도 빼앗습니다. 그것 때문에 세 번이나 옮겨야만 했습니다. 르호봇에 이르러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넓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곳에 와서야 그들의 침탈이, 침략이, 그들의 심술이 멈춥니다. 이제 평안을 찾았습니다. 더 이상 분쟁하지 않습니다. 걱정이 없습니다.
그 후에 이삭이 하나님 앞에 올라갑니다.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창 26:23)
이삭이 브엘세바로 간 것은 예배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창 26:24-25)
그 옛날 아버지 아브라함도 블레셋 지경에서 이삭과 비슷한 인생을 산 적이 있습니다. 거기 와서 살았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괴롭힙니다. 우물을 그냥 빼앗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에게 항의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더 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고, 맹세의 우물 브엘세바에서 함께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거기서 아브라함이 한 가지 의미 있는 행동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창 21:33)
아브라함이 기념식수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맹세의 우물, 브엘세바라고 조약을 맺고 거기서 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에셀나무입니다. 에셀이라는 이름은 '도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셨다는 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이 그곳에 혈육 하나 없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도움받을 한 사람도 없었는데, 하나님이 그를 도우시고 함께 하셔서 역사하셔서, 거기서 살게 하시고 아무런 문제 없이 일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감사하고 고마워서 아브라함은 거기서 에셀나무 한 그루를 심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은 이유는 또 다른 데 있습니다. 나무의 특징 때문입니다. 이 나무는 잘 자랍니다. 위로가 아니라 아래로 잘 자라는 나무입니다. 사막에서 살기에 적합한 나무인데, 뿌리가 30미터 이상이나 내려가는 나무입니다. 사막에는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건조합니다. 그런데 이 나무가 사막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은 뿌리에 있습니다. 견고한 뿌리가 밑으로 밑으로, 땅으로 땅으로 파고 내려가고 또 내려가서, 거기에서 물줄기를 만나 그곳에서부터 물을 빨아올려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나무를 심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여기는 풀 한 포기 없는 사막 같은 땅이다. 누구도 나를 돕지 못하고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는 이 땅에서 내가 살아갈 힘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밖에 없다. 내 인생의 뿌리가 하나님 말씀에 닿아 있지 않으면, 저 깊은 곳으로 뿌리를 내리고 또 내려가서 그곳에서부터 하나님 말씀을 길어 올리지 않으면 나는 살 수가 없다.' 이러한 신앙의 고백이 바로 에셀나무 아니겠습니까?
이건 나뿐 아니라 오고 오는 내 후손들, 내 자녀들, 모든 자손들에게도 함께 해당되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내가 에셀나무를 심는 것은 내 아들 이삭도, 그리고 그 자손도, 그 자손의 자손도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라.' 그런 마음으로 그가 에셀나무를 심었을 것입니다.
이제 시간이 한참 지난 후입니다. 이삭이 어릴 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 따라다니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뛸 때, 그 어릴 때는 의미를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가는 곳에서 우물을 팝니다. 그러면 이삭도 함께 뛰어다니며 우물을 팝니다. 새 샘이 솟아오릅니다. 아버지가 그 샘의 이름을 불러줍니다. 그러면 같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땅을 파고 나무를 심습니다. 이 나무의 이름과 나무에 얽힌 이유와 나무를 심는 이유까지 아버지가 들려줍니다. 이삭은 이제서야 그 나무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고 되새깁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한참 시간이 지난 이후에 이삭이 그곳에 갔습니다. 아버지와 아비멜렉이 함께 언약을 세웠던 브엘세바, 그곳에 가보니 그때 아버지와 함께 심었던 나무 한 그루, 에셀나무가 여전히 거기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 땅은 사막인데, 누구도 돕는 사람이 없는데,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거기에 그 나무는 여전히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나무가 살아있는 이유는 나무의 뿌리가 저 깊은 곳에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아마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지가 이 귀한 교훈을 나에게 주시는구나.'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립니다. '하나님, 저도 여기에서 하나님 말씀에 깊이 뿌리내리고 살겠습니다.' 이 결단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 시절은 성막 시절이 아닙니다. 성전 시절도 아닙니다. 성막도 없고 성전도 없는 시절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부모 세대로부터 자녀 세대로 믿음이 전승되고 내려가는 유일한 한 가지 방법, 바로 예배의 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예배드린 것이 그 자녀에게 기억되고, 그 자녀의 예배는 그 자손들에게도 흘러가고 흘러가고 내려갑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믿음의 전승을 일깨워주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런 예배 DNA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시 12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