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본문: 창세기 26:16-22

이완용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은 없습니다. 매국노 중의 매국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세 가지 사건의 주범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의 을사오적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1907년 정미7조약의 정미칠적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1910년 경술국치의 주범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주권을 넘겨준 세 번의 고비마다 결정적인 순간 그 자리에서 이완용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일제에 국권을 넘겨주고 받은 것은 백작의 작위였습니다. 당시 돈으로 15만 원을 받았는데, 지금 시세로 약 30억 원 정도 됩니다. 나라를 팔아먹고 3년이 지난 1913년에 약 3,700여 평의 저택을 지었습니다. 국권을 넘긴 지 10년이 지난 1920년 그가 보유한 현금이 당시 돈으로 약 300만 원, 현재 시세로 600억 원 정도가 되었습니다. 10년 사이에 재산이 20배로 불어난 것입니다. 그만큼 그 기간 동안 각종 이권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깊이 개입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1926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 어느 신문에서 이런 제목을 뽑았습니다. "팔아서는 안 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사람."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죽은 후 그의 재산을 환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고스란히 그의 자손에게 상속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분노합니다. 친일파의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이런 재산은 받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 후손들 입장에서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내 아버지가, 내 할아버지가, 내 증조할아버지가 이완용이고, 그분이 나라를 팔아서 만든 돈으로 내가 지금 호의호식하고 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도 제정신이 아닙니다. 부끄러워서 숨기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유산은 남기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합니다.

아브라함이 남긴 우물

사람들은 영향력을 남기건 물질을 남기건 반드시 흔적을 남깁니다. 특히 자손들에게 무언가는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기왕에 남기려면 좋은 것을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위대한 믿음의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유산인 우물도 남겼습니다. 이것이 이삭에게 크게 유익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자손들과 자녀들에게 어떤 것을 남기며 살고 있는지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상식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맺은 언약을 상식선에서 잘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도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초보농부였던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지어 그해에 백 배의 수익을 내자 그만 이성을 잃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를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우물에 흙으로 메워버리고 돌을 넣어서 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이 그들에게 떠나라고 말합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창 26:16)

말은 점잖게 '우리를 떠나라'고 했지만 사실상 추방 명령이 아니겠습니까? 떠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이삭과 리브가 가족이 여기서 농사짓고 있지 않습니까? 초보농부로서 밭을 일구고 논을 일구어 열심히 농사지었습니다. 그해에 백 배 수익을 얻었습니다. 떠나라고 하는 것은 농사지은 농토와 땅과 모든 것을 다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골짜기로 간다는 것은 이삭과 리브가 가족이 이제는 겨우 연명하겠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이어가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크게 농사짓고 크게 목축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이삭에게는 생각이 있었고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창 26:18)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도 그 땅에서 농사짓고 목축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브라함이 거기에서 여러 개의 우물을 이미 파둔 적이 있습니다. 이삭은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장소도 알고 있었고, 아버지가 불렀던 우물의 이름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에서 우물을 파고 다시 생명을 연장해 나갑니다.

창세기 21장 25절과 3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창 21:25)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창 21:31)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농사지었는데 역시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그 가족들을 위협했습니다. 우물을 빼앗아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항의합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하나님 앞에서 맹세했습니다. 그래서 그 우물이 맹세의 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후손들을 위해 그 우물을 등기한 것입니다. '앞으로 영원히 이 우물은 우리 자손의 것입니다. 내 것인 동시에 우리 자손의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이미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받아 놓았습니다. 그 덕분에 이삭이 그 우물에서 다시 물을 길어 먹고, 위기에 빠졌을 때 죽지 않고 생명을 연장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 남긴 유산은 바로 이렇게 좋은 우물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자녀들에게 무언가를 남겨주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자녀들에게 남겨주고자 하는 것은 돈입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동산과 부동산을 어쨌든 많이 쌓아두면 자녀들이 좀 편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돈은 쓰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쓰면 없어집니다. 혹시 투자라도 잘못하면 한순간에 종이 조각이 되어버립니다. 명예는 어떻습니까? 아버지가 누렸던 명예를 자녀들에게 그대로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명예라는 것이 한번 땅에 떨어져서 추락하기 시작하면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한번 추락한 그 집안의 명예는 다시 세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돈도 명예도 자녀들에게 영원한 영향력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신비로운 것은 이 우물을 물려주었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흙으로, 돌로 메워버렸는데,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이삭이 그것을 파보았더니 여전히 거기서 생수가 솟아납니다. 여전히 사람들이 먹고 마실 수 있는 좋은 우물에서 양질의 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후손들에게 이런 것들을 물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