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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 시리아 내전과 난민

<aside> ✨ <러브 앤 아나키>(2020)라는 스웨덴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출판사를 배경으로 하는 블랙 코메디인데요. 스웨덴이라고 하니 우리와 동 떨어진 얘기를 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주요 화두인 세대 갈등, 젠더, 청년실업, 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이슈 등이 곳곳에 스며 들어 있습니다. 그만큼 세계가 연결되어 있으며, 한국 역시 민주주의 사회가 겪기 마련인 보편적 단계를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습니다; 출판사 인스타그램 계정에 여성의 성기 사진이 업로드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시각에 50대 에디터와 20대 홍보팀장은 청년작가에게 자신의 성기 사진을 보낸 고령의 작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요. 고령의 작가가 출판사의 주요 수입원인만큼 신작을 출간해야 한다와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과는 더이상 계약을 유지해선 안 된다는 입장으로 맞서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하는 때에 '나라의 경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파리가 앉은' 것처럼 SNS에 성기 사진이라니요!

이들은 곧장 IT 부서를 찾아갑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범인(?)을 찾을 수 있는지를 묻자 담당자는 해킹 가능성을 거론합니다. IS나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단체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러자 에디터와 홍보팀장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렇게 말합니다.

"러시아일지도 몰라요." "언론의 자유를 공격하려 한다니 심각한 일이에요. 극도로 심각해요." "맞아요. 우리 어쩌죠?"

조금 전까지 목소리 높여 싸우던 두 사람이 '해킹' 앞에서 위아더월드가 되어 돌아갑니다. 사실 범인은 IT 담당자였습니다. 출판사의 디지털화 작업을 담당하는 컨설턴트와의 내기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인 건데요. 의도나 과정은 불손했지만 덕분에 출판사는 평화 아닌 평화를 맞이했습니다. 러시아가 의도치 않게 참 큰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러시아의 이미지는 이와 완전히 다릅니다. '불곰국'이라 불리우며 친근한 면모가 많죠. 악명 높은 KGB(러시아 국가보안위원회) 출신의 푸틴마저도 한국에 건너 오면 '밈'의 소재에 불과합니다. 상식을 뛰어 넘는 투표율이나 독재에 대해선 비판적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러시아를 한국의 적국이라 인식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이웃국가인 일본만 해도 쿠릴 열도 분쟁 때문에 러시아를 상당히 경계합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적 상황에 대입해 봤습니다. '러시아' 자리에 '조선(북한)'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최근에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2021)라는 시트콤이 공개 됐는데요. 북에서 단거리 발사체가 발사됐다는 보도가 나오는데도 모두들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집니다. 종내에는 연예인 가십이 터지면서 모든 이슈를 잠식시켜 버립니다.

한국적 상황에서 설득력을 갖추려면 아무래도 '보이스피싱과 스팸 문자'가 들어가야 할 겁니다. 한국 스릴러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골 소재기도 하죠. 이들 범죄 조직의 본거지가 중국인 경우가 많아 '디지털 범죄=중국'으로 인식될 정도인데요. 바로 어제에는 대우조선해양이 해킹을 당했다며 북의 소행으로 추정된다는 기사가 올라 왔지만 댓글을 보면 '중국이 의심된다'는 반응이 적지 않습니다. 진실은 조사 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그만큼 중국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걸 방증합니다.

결론은 서는 자리가 다르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그리고 <러브 앤 아나키> 재밌습니다. <아멜리에>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혹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특히 강추입니다. 똘기 충만한 에너지에 흠뻑 샤워하실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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