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흉년이 들매

본문: 창세기 26:1-6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배움을 얻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 배움이 오늘의 삶에 실질적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현재에 일어나고, 현재 일어난 일이 미래에도 되풀이됩니다. 상황은 달라져도 그 본질과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에 실패했더라도 그 실패를 거울 삼아 제대로 살아낸다면, 현재와 미래는 훨씬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기에 같은 문제 앞에서 쓰러지고, 같은 자리에서 넘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앗시리아라는 거대한 제국이 일어났습니다. 이 제국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 나라를 점령해 나갔지만, 얼마 가지 못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지나친 팽창 정책과 피정복민에 대한 가혹한 통치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아시리아에 이어 일어난 바벨론도 같은 전철을 밟았고, 역시 멸망했습니다. 바벨론 뒤에 일어난 페르시아는 앞선 두 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성했습니다. 세계 제패의 야망을 품을 정도의 국력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 황제가 그리스 원정을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실패하면서 국력이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당했습니다.

페르시아의 황제들이 앞선 바벨론과 앗시리아의 역사를 공부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제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들은 역사를 배우고 깨닫고, 그 가치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선대 제국이 왜 망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통해서도, 머리로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앎을 자기 삶에 적용하지 못했기에 같은 전철을 밟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결정적 강점이 있으니, 바로 기도입니다. 흔히 기도라 하면 무엇인가를 청원하는 것만 떠올립니다. 그러나 기도의 본질은 자기 반성에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자기 인생과 삶을 반추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회개라 부릅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돌이킬 때 비로소 발전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달라고만 구하는 것으로는 어떤 성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기도하지 않아서 범했던 실수를 가만히 살피고 돌아보며,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단할 때, 비로소 비슷한 상황이 찾아와도 더 나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강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삭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아브라함 때 첫 흉년이 들었는데, 아브라함은 그 흉년을 잘못 다루어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아들 이삭은 달랐습니다. 이삭 때에도 흉년이 찾아왔지만, 그는 이 흉년을 잘 헤쳐 나갔습니다. 무엇이 달랐는지,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살았던 가나안 땅, 팔레스타인은 사람이 살기에 만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농사짓기도, 목축하기도 힘든 땅이었습니다. 이른 비가 내려야 파종과 경작을 시작할 수 있고, 수확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늦은 비가 내려야 농사가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늘 하늘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이른 비가 적절히 내릴지, 늦은 비가 제때 와서 농사를 풍성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 그 걱정 속에서 항상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살기 힘든 땅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훈련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을 그곳에 불러 하늘을 바라보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니, 훈련의 장소로 이보다 적합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그 땅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그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반복되는 역사, 엇갈리는 선택

그런데 그 땅에 흉년이 찾아옵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창 26:1)

아버지 아브라함 때 흉년이 들었고, 이제 이삭 때에 와서 또 흉년이 찾아옵니다. 이삭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이 땅에 계속 살아야 합니까? 걸핏하면 흉년이 찾아오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걱정과 고민과 염려 속에서, 차라리 다른 곳으로 떠나버릴까 하는 마음이 왜 들지 않았겠습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흉년이 찾아왔을 때, 아브라함은 이렇게 행동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 12:10)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물을 주셔야 마땅한데, 그를 맞이한 것은 심한 기근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실망하고 이집트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은 채 그냥 내려가 버린 것입니다. 내려가면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고,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기는 치욕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아내를 되찾게 하셨고, 바로는 속은 것을 알고 아브라함을 꾸짖은 뒤, 은금과 패물과 가축과 노비를 잔뜩 안겨 돌려보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부가 아니라 재앙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조카 롯의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노비 가운데 하갈이라는 여인이 아브라함의 집에 들어왔고, 하갈로 인해 그 가정에 불어닥친 풍파가 얼마나 심했습니까. 이것이 첫 번째 흉년, 아버지 아브라함이 흉년을 잘못 다룬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의 피해를 이삭이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자라면서 이스마엘과 하갈로 인해 집안에 닥친 고난을 목도했고, 자기 인생에도 위기가 찾아오는 것을 지켜보며 성장한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 흉년이 찾아옵니다. 이삭도 목축하는 사람이었으니,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가축을 이끌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옮겨 가며 목초지를 찾았지만, 팔레스타인 남동쪽 블레셋 지방까지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창 26:2)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 내가 지시하는 땅에 머물러 있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중대한 교훈을 발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