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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에 있는 보호소로 두목을 데리러 갔다. 두목은 소장님의 품에 얌전히 안겨서 나왔다. 두렵지만 차분해 보였다.

돌아가는 길이 막혀서 두목은 내 무릎 위 이동가방 안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에 대한 신뢰가 없을 것이 분명한데도 내 팔 위에 턱을 궤고 졸았다 깼다 반복했다. 내키지 않지만 별 수 없으니까 체념한 것 같았다.

두목이 태어난 날은 7월 10일 쯤이라고 한다. 입양신청서를 작성할 때 소장님이 달력을 보고 그 자리에서 정해주신 날짜지만 일단 7월생인 것은 맞을 것이다. 두목은 현재 2개월령의 강아지고 2차 예방접종을 앞두고 있다. 강아지의 건강 상태를 미리 체크하고 입양할 수는 없으므로 병원 방문을 앞두고 큰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매우 간단히 건강해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몸무게는 1.28kg으로 마른 편이니 밥을 잘 먹이라고 하셨다. 구충제만 하나 먹고 집에 돌아왔다.

보호소에서 집까지 두목은 아주 작은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하품 소리나 겨우 들렸다. 우리집에 왔을 때 호기심보다 불안이 앞서서 찾아낼 수 있는 가장 구석진 곳에 들어가서 눈치를 봤다. 사료를 불려서 줬지만 식욕이 없는지 몇 알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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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을 두고 침대에서 자려니 마음이 편치 않아서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두목은 잠깐 내 어깨와 목 사이에 웅크리고 자다가 다시 구석으로 가버렸다. 요이불을 접어서 방석으로 쓰게 놔두고 다시 침대에서 자다가 고약한 냄새에 깼다. 두목이 선반 겸 책장 아래서 설사를 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웅크리고 있었다. 닦아주려고 하니까 겁이 나서 딱 봐도 자기가 들어갈 데가 없는 틈새를 파고들어 도망치려고 했다.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지만 이상한 고집이 있는 강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접어둔 요이불에는 오줌을 쌌다. 6개월 까지는 배변훈련이 완벽히 되지 않는다고 책에서 읽었기 때문에 첫 오물 수습은 그다지 충격적이거나  절망적이지 않았다. 단 냄새는 정말 지독했다. 두목이 주눅들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해서 뭐든지 다 잘 했다고 응원하고 쓰다듬어줬다.

9월 7일 (화)

눈치 주게 될까봐 두목이 뭘 하든 신경쓰지 않는 척 애썼다. 밤에는 허둥지둥 숨기 바빴는데 해가 뜨니 조심스럽게 집안 구석구석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방석도 물어뜯고 하는 걸로 보아 말썽쟁이의 싹이 보이는 것 같았다. 노즈워크를 시켜주려고 사료를 여기저기 뿌렸는데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의자에 앉아서 일하면 두목이가 뒤에 있으니까 볼 수 없어서 계속 바닥에 앉아있었다. 무릎 위에 올려도 봤는데 의외로 저항하지 않고 편하게 잠들었다. 낑낑 소리 조차 내지 않던 개가 내 무릎위에서 자다가 잠꼬대를 하며 으르렁 대기도 했다. 이삼일간 두목은 악몽을 꾸는 건지 잠꼬대를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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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 (수)

두목이 만 하루 사이에 보여준 변화는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 SF에 나오는 급속도로 성장하는 아기 괴물같았다. 기운을 차린데다 마음도 편해졌는지 새벽에 활동량이 왕성해 졌다. 심심한 건지 삑삑 소리를 내며 깨웠다. 잠결에 손을 뻗으면 손을 정성스럽게 핥았다. 덕분에 일찍 깨서 요가를 하는데 자세를 바꿀 때마다 자기 가까이 보이는 대로 깨물고 핥았다. 방 안에만 있는 건 심심할 것 같아서 같이 옥상에 올라가봤는데, 두목은 어리둥절해 보였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내 눈만 보고 내 발만 쫓아다녔다. 5분만에 내려와서 저녁까지 계속 잤다. 두목은 귀가 잘 안 들리나 싶을 정도로 사람의 기척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무심함도 조용함도 고양이를 닮은 것 같다.

9월 9일 (목)

그랬는데 새벽에 또 활개치고 다니더니 또 자는데 깨워서 놀아달라고 떼를 썼다. 그때는 정말 졸려서 삑삑 낑낑 대는 소리를 애써 무시했는데 갑자기 “왕!!!!!!!!” 하고 우렁차게 짖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짖은 것이다. 놀랍고 기특하고 웃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두목도 놀람과 동시에 어떤 희열을 느낀 듯했다. 자다 깨서 두목을 축하해주고 호들갑을 떨었다. 두목에 대해서 알아가야 할 것이 산더미고 그 모든 걸 우리가 같이 발견해 나갈 것이다. 다시 침대에 누웠더니 또 "왕!!!!!!" 하고 짖었는데, 이번에는 못 들은척 등을 돌리고 누웠더니 기특하게도 반복하지 않았다. 떼쓰는 법을 모르는 의젓한 강아지다.

두 번째 옥상 탐방은 조금 더 길게 돌아다녀봤지만 역시 내키지 않아보였다. 커다란 까치가 가까운 난간에 앉았는데 두목은 아무런 겁도 흥미도 없어보였다. 우리집 근처에 까마귀떼가 많은데 까마귀가 두목을 납치하는 상상을 잠깐 하고 두려워졌다. 지금의 두목은 충분히 까마귀 발에 잡혀갈 수 있는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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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너무 안 먹어서 저녁에 습식캔을 사러 잠깐 나갔다. 두목이 온 후 첫 외출이다. AD라는 습식캔을 줬는데 두목이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이날 저녁에는 처음으로 손님이 왔는데, 낯선 사람의 방문에도 두목은 시큰둥하다가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며 거리를 좁혔다.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 아래를 지나다니고 손님의 백팩 끈을 잘근잘근 씹기도 했다. AD를 급하게 먹어서인지 토를 조금 했고 입을 닦아주느라 손님이 잠깐 안고 있었더니 그새 곁에 와서 앉았다. 두목은 나흘만에 바닥이 아닌 배변패드만을 골라서 볼일을 보고 있다. 이렇게 금방 익히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자신이 활동하는 곳에서 가장 먼 곳에 대변을, 다른 곳에는 소변을 구분해서 싼다.

9/10 (금)

두목이 새벽에 설사를 심하게 했다. 마치 살인현장의 피처럼 똥이 바닥에 흥건하게 쏟아져있었다.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똥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당장 수습해야한다는 일념으로 해치웠으나 생각해보니 살면서 겪은 가장 극단적으로 비위생적인 상황이었다. 이 경험으로 조금 신기했던 점: 강아지가 있으면 좋겠지만 이런 건 힘들겠다고 예상한 상황에 실제로 놓이니까 그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보다 꽤나 덤덤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이었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삶의 내용은 장단을 나누거나 그 무게를 비교해서 어느 게 더 큰지에 따라 행복 또는 불행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두목은 내 삶에 들어와서 내 일상을 살찌우고 더 넓은 스펙트럼의 색채를 보게 해준다. 내 집의 한 구석, 그것도 식품 보관용 선반에 오물이 다 튀는 상황에 처한 것도 그 일부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지막지한 양의 설사를 가구를 들어내면서 청소해야한다고 해서 강아지와 함께 하는 삶의 행복이 위협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건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