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6장 5-6절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 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아멘.
오늘은 레위기를 공부하는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대속죄일에 대해서, 그리고 아사셀 염소에 대해서 함께 나누겠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레위기가 구조적으로 아주 정교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레위기 1장에서 7장까지는 다섯 가지 제사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다섯 가지 제사의 구체적인 내용과 특징을 다 살펴보았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이 다섯 가지 제사를 집례하는 지도자가 있는데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8장과 9장에서는 제사장의 위임식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위임받은 제사장이 백성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예배를 드리는데, 사고가 났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아론의 첫째 아들 나답과 둘째 아들 아비후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그만 죽고 맙니다. 이것은 그 당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악할 만한 사건이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어떻게 제사장의 두 아들이, 그리고 그들도 제사장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셔서 그 자리에서 죽을 수가 있는가? 옷은 하나도 타지 않고 사람만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건이 있고 나서 백성들은 '예배를 대충 드려서는 안 되겠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그렇게 드려야 되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사에 대한 규정 이야기를 하고 나면,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중요한데 백성들의 정결과 회복에 대해서 11장부터 15장까지를 나누었습니다. 예배 드릴 수 있는 사람, 예배 드리기에 부적합한 사람, 그것을 우리가 부정이라는 말을 써서 살펴보았습니다. 부정이라는 말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종래의 부정이 아니고 예배 드리기에 부적합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은 여인 같으면 나와서 예배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산후조리를 해야 되니까요. 그런 의미를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오늘은 예배 규정에 대해서 제일 마지막입니다. 레위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예배와 일상생활입니다. 17장부터는 일상생활에 대한 규정입니다. 이제 16장 오늘이 예배에 대한 총집대성이고, 가장 중요하다면 중요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규정입니다. 이른바 대속죄일 규정입니다.
대속죄일은 아마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가 여러 번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욤 키푸르(יום כיפור)', 이 말은 처음 들어 봐도 대속죄일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1년에 한 번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위해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하는 행위를 대속죄일이라고 하고, 그날은 안식일 중에 안식일, 큰 안식일이라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조건 쉬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날, 대속죄일에 대해서 오늘 공부하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 우리 교재에는 46쪽인데, 16장 1절이 빠져 있습니다. 16장 1절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이 구절을 한번 잘 보십시오. 그냥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이렇게 하면 좋은데, 굳이 그 말을 왜 썼을까요?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라고요. 사실 아론은 상처가 있습니다. 자기 두 아들이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불이 나와서 죽은 것은 아론에게는 큰 상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충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대속죄일 규정을 말씀하시면서 굳이 이 상처에다가 소금을 뿌리고 다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시작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이유를 우리는 압니다.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번제단에 있는 불을 가지고 분향해야 되는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하나님이 노하셔서 그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건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었습니까? 예배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 중심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 하나님께서 받기를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이것을 인도하고 이끌어 줘야 되는 것은 제사장의 책임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서두에다가 이 사건을 상기시키는 이유는 '너희 마음대로 멋대로 예배 드리지 마라, 지금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는 대로 있는 그대로 예배 드려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가끔씩 중간중간마다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면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자기 편한 대로 하기 쉽습니다. 원래 예법은 그게 아닌데, 원래 규정은 그게 아닌데 '아, 여기까지는 좀 괜찮겠지, 여기까지는 좀 괜찮겠지' 해서 서서히 서서히 서서히 변질되고 변질 되다가 타락하는 것 아닙니까?
사실 지금 우리가 온라인 예배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온라인 예배 드릴 때는 TV 앞에다가 앉아 가지고, 화면 앞에 앉아 가지고, 넥타이도 매고, 옷도 깨끗하게 입고, 핸드폰 끄고, 누가 뭐 부시럭거리는 소리 내면 혼내고 그러다가, 요즘은 양말도 벗고 드러누워 가지고 침대에서, 뭐 앞에 그거 잘라 먹고, 설교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만 보고, 뭐 이러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은 사람이란 존재가 그렇게 그렇게 서서히 서서히 타락해 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한 번씩 이렇게 꾹 찔러 주시는 것입니다. 나답과 아비후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요. 그러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어떻게 됩니까? 움찔하지 않습니까? 정신이 번쩍 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 사건이 있었지, 아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대로 된 예배를 드려야지.' 정신을 한번 차리라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 말씀은, 그리고 나서 2절부터 시작되는 대속죄일 규례는, 정신 차려 들으라 하는 뜻입니다.
대속죄일을 위하여 대제사장은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16장 2절과 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림이 딱 그려져야 되는데,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성소의 휘장 안, 속죄소 앞에, 법궤 위 속죄소 앞에. 그림이 그려지세요? 그냥 글자만 들어오고 도무지 모르겠다 하시면,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길을 찾아야 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