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특강 9 - 하나님의 능력 (고후 10장)

고린도후서 10장 4-6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오늘은 고린도후서 공부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주제로 함께 공부합니다. 이전에 나누었던 말씀들, 그 키워드들을 하나하나 꺼내보시고 기억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키워드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내가 누군가를 붙잡고 설명할 수 있으면 공부를 잘하신 것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고 하면 그 반대가 세상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근심이라고 했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우리가 세상 근심이라고 하면 대개 물질을 걱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하셨고, 결국 그 근심이 자기를 찌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근심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는 것은 영혼을 위한 근심,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근심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더 가치 있고 수준 높은 근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설명할 수 있으면 훨씬 더 유익합니다. 풍성한 연보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나누었고, 오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0장 이야기입니다.

1. 온유와 관용의 목회

먼저 1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 말이 어떤 의미이냐 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 얼굴을 보면 할 말을 못 하는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얼굴을 보지 않고 떠나서 편지를 쓰면 아주 강하고 직설적으로 할 말을 다하는 나 바울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울의 진심이 아니라 반어법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바울을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편지에만 강하게 표현하느냐? 얼굴 보고는 그렇게 말 못 하지."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말을 받아서 "그래 너희가 그렇게 비난하고 비꼬고 이간질하며 설명하는 나 바울은"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서신을 읽을 때는 곧이곧대로 읽으시면 안 되고, 어떤 문맥인지, 어떤 맥락인지, 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지를 좀 뜯어봐야 합니다. 살펴보고 들여다봐야 충분한 맥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진짜 어떻게 성도들을 대했습니까?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대한 방식이 온유와 관용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온유와 관용이라는 것은 크게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이 말하는 온유의 개념을 알고 있으면 온유와 관용은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이 말하는 온유,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팔복에서 말씀하신 온유는 야생동물 이야기를 빼놓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조련사에게만 길들여진 야생동물의 성품을 온유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여기서 온유와 관용으로 했다 할 때, 이 온유는 "나는 하나님에게만 길들여진 사람이다. 세상과는 타협하지 않는다. 너희의 상황과도 나는 타협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온유는 세상이 말하는 온유처럼 그냥 마음 좋고 착하고 너그럽고 하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대로 너희 성도들을 대했던 나 바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말씀대로 대하면 어떻습니까? 말씀의 기준에 비추어서 성도들이 잘못 가면 추상같이 책망하고 나무랐다는 뜻이고, 말씀의 기준대로 살아서 잘하면 칭찬하고 격려하고 긍휼히 여겼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바울이 말하는 온유는 말씀대로 했다는 뜻입니다.

관용은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지만, 그러나 잘 따라주지 않는 자들을 몇 번이고 용서하고 용납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온유와 관용에 대해서 항상 이 개념을 알고 있으면 바울이 성도들을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2절,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이런 자들은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며 동시에 바울의 대적자들에게 함께 동조하는 자들, 성도들 중에 바울을 비난했던 자들입니다.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자기를 거짓 중상모략하는 대적자들 그리고 거기에 동조하는 세력들에 대해서 강하게 질책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데, 직접 가면 너희들이 다 돌이키기를 바란다, 그래도 그때까지 이런 자질이 남아 있으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1-1. 강한 자에게 강하고

우리가 이 1절, 2절 말씀에서 바울이 어떤 식으로 목회했는지를 한 줄로 요약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울이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를 긍휼히 여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강한 자에게 무조건 강했다는 뜻이 아니라, 권력 있고 강한 자들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살지 않는 자들에게는 할 말을 다 했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4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하루는 안디옥교회에 예루살렘교회 지도자 베드로가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안디옥교회에 왔는데,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이방인들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루살렘교회에서 일단의 지도자들이 또 방문을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베드로가 깜짝 놀라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원래 유대인들 율법에 의하면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못 하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바울이 이런 베드로를 책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