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4장 4절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오늘은 지난 시간 말씀에 이어서 사무엘상 23장 말미부터 26장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무엘상하 특강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에 이미 공부했듯이 다윗 일생의 하이라이트, 다윗 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자리는 나중에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광야 시절이 그러합니다. 광야에서 치열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으며, 그 가운데 위기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과정을 보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구원하신 주의 능력을 경험했던 그 시간이야말로 다윗 일생의 최고의 영광이었습니다.
예수님 공생애에 있어서도 가장 빛나는 순간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고 영광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사실 광야 없이 영광을 얻기를, 광야 없이 왕관을 쓰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되는 걸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은 훈련받아야 하고, 당연히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경험해야 그다음이 있는 법입니다. 훈련을 기꺼이 받을 수 있는 길이 오늘 다윗이 걸어갔던 길입니다.
다윗이 광야로 내몰렸습니다. 자기가 원해서 광야로 자기 발로 간 것이 아닙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니까 왕궁에서 쫓겨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당시 내적으로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니까 다윗이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두 가지 일을 합니다.
첫째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거짓말이 나중에는 엄청난 화를 불러왔습니다. 둘째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니까 가서는 안 될 곳으로 갔습니다.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갔습니다. 위기 상황을 겪고 겨우 미친 척하며 거기서 살아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러고도 살아야 하나?' 그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 사람 찾아다니지 말고, 사람 피해 다니지 말고, 이제 하나님께 피하라. 나에게 피하라.' 시편 34편에 다윗이 그 위기를 겪고 기도하고 응답받았던 내용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다윗의 일생이 달라집니다. 광야 생활이 도망 다니고 두려워하고 피해 다니던 생활에서 이제는 정면으로 돌파하는 삶으로 분기점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둘람 굴에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이 모여들었는데 한둘이 아니고 사백 명이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곳에 보내주신 이유는 광야에 있지만 진짜 왕으로 살아보라는 것입니다. 저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지 못하고 어떻게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 그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장차 내가 진짜 왕이 되면 이 나라를 어떻게 통치해야 할지를 마음에 미리 공부하고 새기는 것입니다. 돈으로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광야는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학습의 장입니다.
하나님이 '그일라를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블레셋이 그일라를 침공했는데 하나님이 도우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일라 사람들이 배신합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다윗은 다시 목자의 심정을 느낍니다. 사실 다윗은 쫓겨 다녔는데 그일라를 구원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 계속 물었습니다. 종의 정체성, 왕이지만 종의 정체성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했습니다. 선을 행하고 고난을 받았습니다. 지금 그런 광야에서 공부하고 배우고 있는 과정입니다.
사울에게 다윗이 있는 장소를 고발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사무엘상 23장 19절을 보시면, 그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산 숲속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이니이다" 하니, 이런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사실 다윗 입장에서 십 사람들이 어떤 느낌이겠습니까?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요? 원망스럽고 화가 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도 다윗에게 경험하게 하시고 보여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실 왕의 자리는 편 가르는 자리가 아닙니다. 내 백성이 따로 있고 남의 백성이 따로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때로는 나한테 좀 못되게 해도, 때로는 나에게 좀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해도 어쨌든 내 백성입니다. 품어야 하고, 돌봐야 하고, 함께해야 합니다. 그런데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편을 가른다면, 내 편 네 편을 나누고 적과 아군을 나눈다면, 그건 통치자의 자격으로서 낙제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십 사람들을 찾아가서 죽여 버릴까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그러면서 백성들의 속성을 느끼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의 속성을 느끼는 것입니다. 권력 앞에서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가진 게 있습니까? 배운 게 있습니까? 힘이 있습니까? 권력이 있습니까? 권력 앞에서 그 권력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민초들의 고단한 인생을 다윗이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을 배워가고 넓혀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사실 이거 광야 아니면 어디서 배우겠습니까?
지금까지 다윗은 왕의 군대 장관으로 가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하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다 박수 쳐줬습니다. 가는 곳마다 인정받았고, 여인들이 노래 불러서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라" 다 높여 주었습니다. 맨날 칭송받고, 맨날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쫓겨난 상태이고, 백성들이 사울에게 가서 다윗이 숨어 있는 곳이 여기라고 고해 바칩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고발할 수밖에 없는 저들의 고단한 처지를 이해하면서 진짜 왕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과정을 하나하나 훈련시켜 가고 계신 것입니다.
사울이 그들에게 어떤 명령을 내립니까? 십 사람들이 일단 사울에게 다윗이 숨어 있는 곳을 알려줬습니다. 사울이 말합니다. 23장 21절,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사실 사울이 할 말은 아닙니다.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사실 하나님을 자꾸만 입에 올리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꾸 하나님을 고의로, 임의로, 자기 생각대로 끌고 옵니다. 자기가 복 받기를 원한다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통해서 이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겠습니까?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사기꾼들이 하나님을 자주 입에 올립니다. 지금 사울이 그런 상황입니다.
또 당부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하는 자라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이렇게 미션을 줍니다. 진짜 다윗을 찾으면 포상금도 주려고 했겠지요.